양치질을 이렇게 열심히
이삿날이었다. 아이들은 이사하는 날에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치과에 보냈었다. 엄마는 이삿짐 옮기고, 동사무소 가서 전입신고 하고, 두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가서 각종 업무를 보는 동안 아이들은 치료를 받았다. 올해 중 3인 큰 아이는 여섯 살 때부터 충치치료를 시작해서 초등학교 땐 대시술을 받은 적도 있다. 치과를 본래 싫어한다. 아마도 신경치료 기억 때문이리라. 둘째는 은근 열심히 안 닦는 거 같은데, 아직 충치는 없다.
치과에 다녀온 이후로 둘은 폭풍칫솔질을 한다. 병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사 선생님께 단단히 교육받고 온 거 같다. 그분이 워낙에 설명을 잘해주시기도 한다. 무심한 쪽에 속한 엄마인 나는 갈 때마다 혼난다. 제대로 아이들 치아를 관리하고 계시냐고 계속 질문을 한다. 흑. 나도 무서운 곳.
어제저녁에도 어김없이 야식을 먹다가 갑자기 와그작하는 소리가 났다. 그 이후로 오른쪽 어금니 안쪽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와그작 이후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있었다. 이게 뭔가. 나도 치과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오늘은 상담실 출근일이라 다녀왔다. 최대한 그쪽으로는 음식물을 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낮에는 꽤 괜찮더니 저녁이 되니 다시 아프다. 휴, 병원을 가야 하는 것인가. 퇴근 후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설거지, 세탁기 돌린 후 책상에 다시 앉았다. 2시간 동안 책을 읽고 자야지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른쪽 어금니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애착외상의 발달과 치료'를 읽고 있는데 '정신화'내용에 빠져서 한참 읽다 보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이제 글을 써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양치만 하고 글 써야지.'
하고 열심히 양치하다 보니, 내가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잊었다. 혹시나 치과 가서 나도 신경치료 하게 될까 봐 무서워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걸 선택했다. 오른쪽 왼쪽 위아래 구석구석 양치질하고, 치간칫솔로 다시 한번 이의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러고 나니 10분이 훌쩍 넘은 게 아닌가.
세상에, 양치질에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다니 그동안 몰랐었다.
아이들이 양치한다고 들어가 놓고 왜 나오지 않았는지도 알 거 같았다. 치과가 무서웠던게지.
나도 모르게 훌쩍 흘러버린 시간에 흠칫 놀라서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다.
양치질과 몰입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