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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Mar 09. 2023

피어난다

두 번의 상담, 한 번의 컨설팅, 또 두 번의 상담

두 번의 상담


 오전 10시, 내담자와 두 번째 만남이 있었다. 상담실은 창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곳이다. 빌딩숲 가운데 한 빌딩에 상담센터가 있는데 개인상담실 4개 중에 딱 한 군데만 바깥이 보인다. 오전 10시에는 첫 타임으로 우리 상담밖에 없다. 그래서 풍경 좋은 상담실에서 진행했다. 내담자는 지난주보다 표정이 밝아졌다. 다음 회기에 오지 않을까 고민하고 슈퍼비전도 받았다. 오늘 대화를 나눈 후에 다음 회기에 만날 순 있겠구나 안심이 되었다. 


 오후 1시 카톡이 왔다. 교육분석 교수님이었다. "우리 상담이 언제지요?" 

이 교수님의 매력이다. 그래서 이 분께 교육분석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하시고, 시간에 대해서 관대하시다. 나처럼 시간에 대해 딱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잘 맞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융의 말씀을 떠올리며 살고 있다. 오늘 2시인데 변경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상담실 근처 카페에서 오후 4시 30분에 있는 컨설팅상담에 쓸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교수님은 "가야지요~"하고 답이 오셨다. 오후 2시 상담실에서 만났다. 


오늘은 3회기 차인데 무엇을 다루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사실 첫 번째 회기에 갖고 왔던 고민은 석 달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나와 교수님 사정상 시간이 맞지 않아서 두 달 동안 2회기 진행되었다. 이제 남은 3회기 동안에는 매주 만나기로 약속했다. 뭔가 더 안심이 되었다. 역시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도 긴장되는 뭔가 있다. 상담시간도 60분을 훌쩍 넘길까 봐 미리 알람도 맞추어 두었다. 히히. 교수님은 60분 딱 맞추는 걸 싫어하시는데, 내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 하는 수 없다.


오늘은 내 몸의 반응을 살폈다. 감정을 이야기할 때 몸의 반응을 살피는 걸 제대로 하고 싶은데, 어느 정도 알아차리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비폭력대화 NVC3과정에서는 이 부분을 매시간 다루었는데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때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다 같이 하는 느낌이었고, 오늘은 개인과외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말을 할 때 내 몸의 어디에서 슬픔이 느껴지는지 물으셨다. 대답하지 못했다. 교수님은 한 번 더 물어보셨고, 불편한 부분을 느껴보라고 하셨다.


가슴의 답답함은 잠시 느끼다가 사라졌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먹은 솜이 어깨를 점점 더 무겁게 누르는 느낌이었다. 그 말씀을 드렸더니 다가오셔서 가만히 어깨에 손을 올려두셨다. "여기가 맞나요?"살짝 누르시는데, 통증이 느껴졌다.


"슬픔을 어깨로 감당하고 계셨군요."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다.

"어깨는 책임감이라고 하던데."


나는 책임감의 덩어리가 커서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교육분석을 받는다. 나를 알아차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한 번의 컨설팅


오후 4시 30분 컨설팅이 시작되었다. 집단상담 커리큘럼에 관한 상담이었다. 어제 하루 종일 고민했던 것과 오전까지 열심히 작성한 문서를 열어두고 열심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역시 의견을 나누면 더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전까지 이 컨설팅일 취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계획서를 완벽하게 작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눈 딱 감고 도움을 받자는 마음으로 컨설팅 줌 주소로 들어갔다. 1시간 반 뒤에 내 마음은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였다. 계획서는 더 구체화되었고, 꿀팁들도 전수받았다. 얼마나 고마운지. 나의 불편한 마음(수치심)을 조금만 넘어서도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랬다.




또 두 번의 상담


"선생님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으셨어요?"

눈물이 났다. 목요일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수련시간이다. 지난주부터 상담자와 내담자 역할을 번갈아 가며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상담자 역할을 할 차례였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가만히 듣다가,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리고 어깨를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고, 나중에는 심장을 누가 쥐어짜는 통증이 느껴졌다.


상대방 선생님이 지나온 세월들이 그만큼 가시밭 길이었다. 내 몸으로 느껴졌다.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경우에는 상담자의 몸의 반응으로 온다고 들은 적 있다. 낮에 교육분석에서 몸의 감각이 열리는 경험을 해서인지 이야기를 듣는데 온몸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들을 상대방 선생님께 그대로 돌려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무너질까 봐 내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군요."

그랬다. 그분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온몸으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으셨던 거였다. 그분의 강점은 내가 이야기를 하면 요약해서 전달해 주는 거였는데,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한 말을 있는 그대로 돌려주었을 때 내담자 입장에서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도 내담자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2시간을 들었고, 다음 타임에는 내가 다시 내담자가 되어서 지난주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팅된 상황에서 상담을 하는 거였는데, 우리는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그 선생님의 삶에 초대받아서 감사한 느낌이었다. 고작 2번 밖에(그것도 zoom으로) 안 만난 사람에게 삶의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서로 상담에 대한 강점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해주셨다. '공감적 이해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내가 상담자 길 앞에서 머뭇거렸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내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분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해 주셨다.


"선생님을 위해서 박사 진학을 선택해 보세요."


이 문장에 울림이 있었다. 역시 6년 넘게 상담하신 분의 연륜이 있으셨다.


이렇게 하나씩, 내 몸에 뭔가 장착되는 느낌이다.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게임은 잘 모르지만, 아이템을 장착하는 기분이랄까.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나 자신을 궁금해하며.

오늘 글도 마무리.


내 삶은 이렇게 피어나고 있나보다.





*11시 30분 전에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었지만,

스터디 카페에 갔다와서 11시 20분에 귀가한 딸램이

오늘 부반장이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주어

기쁜 마음에 소고기 구워먹다가, 12시 10분 전에 글을 마무리합니다.

*입가에 미소가 슬금슬금지어지는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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