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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Apr 10. 2023

미루면 커진다

밀린 보고서 작성 관련 자유연상 생각들

한 동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살았다. 내일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을 해결하면서 살다 보니, 밀린 것들이 있다. 학회 수련수첩 정리가 그렇다. 상담보고서 작성도 그렇다. 밀려있는 걸 확인하고 부담이 올라왔다.


오늘 저녁 줌(zoom) 상담 시간이 변경되면서, 그룹 슈퍼비전 참석 후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집에 들어가면 집안일이 또 1순위가 될 거 같았다. 그러면 보고서 작성은 후순위로 또 밀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정신을 차렸다. 


 예전에 나는 보고서 작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었다. 하나하나 완벽을 기해야 하니 여러 개 일을 동시에 하지도 않았다. 올해는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한 건 한 건 완성도는 떨어지고 있다. 오늘은 슈퍼바이저 교수님께 보고서 작성에 신경을 더 써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룹 슈퍼비전이다 보니 다른 상담자들과 한 자리에 있었다. 순간 수치심이 느껴졌다.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고 어쩌면 울컥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순간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내가 신경을 덜 쓴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날림공사 하듯 후딱 써서 낸 것도 사실이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내 상황을 이해해 주시려고 애쓰신다는 것도 느껴졌다.


"선생님은 시간 안에 제출하는 것이 목표셨군요?"


지난주에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내담자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느껴보세요. 떠올려보세요."


오늘 슈퍼비전 할 때도 이 말이 두어 번 나왔다. 교수님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 상황과 생각을 파악해서 본인의 목소리로 들려주셨던 거 같다.


나는 '타인의 이해'가 필요한 내담자였으니까. 그 이해를 해주기 위해서 애써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니 얼굴에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울컥 올라왔던 울음도 내려갔다. 그러고 나서 떠올랐다. 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하지 않은 건 '나'라는 걸 말이다. 이곳 수련 마지막 날짜이기도 했다. 교육분석도 지난주에 끝났다. 앞으로 이 수련센터와는 아마도 슈퍼비전을 받을 때 가끔 들르게 될 거 같다.  이 교수님과 관계는 쉼표일까 마침표일까 오늘은 이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석사지도 교수님과는 지난 2월에 마침표를 찍고 왔다. 이상하게 울음이 나왔다. 내가 마침표를 찍고도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기도 했다. 이번 관계의 마침표는 달랐다. 물론 함께한 기간도 다르다. 석사지도 교수님과는 훨씬 많은 교류가 있었다. 또한 내가 마음속으로 부모님으로 착각할 정도로 크게 느끼기도 했다. 논문 심사 때 다른 교수님이 심사 지적하실 때 함께 방어해주시기도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특별히 따뜻한 느낌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편하긴 했다. 지도 교수님은 따뜻했지만, 그 앞에 가면 안절부절 불편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고 그 앞에서 말 한마디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이번 교육분석 교수님은 훨씬 연세가 많으신데도 뭔가 편안했는데, 따뜻한 느낌은 없었다. 이 차이는 뭘까.


21년부터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동기, 친한 언니 등 동등한 입장에서 사이를 관찰했다면 23년 올해는 권위자와 나의 모습을 관찰하는 중인가 보다.


이번에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권위자에게 주로 순응적인 모습을 보였던 내가 이번에는 내 할 말을 다 하고 왔다. 단톡방에 초대해 주신다는 걸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그리고 아마도 교육분석 중에 다소 당돌한(?) 어쩌면 싹수없어 보이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교수님께 왜 잘 보여야 하죠?) 뭐 이랬던, 그래서 교수님께 따로 메일을 드렸던 거 같다. 교수님은 별로 싹수없었던 장면은 없었다고는 하셨지만 예전과 내가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건 알게 된 회기였다.


아무튼 이 교수님께 슈퍼비전 보고서를 올리고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관계'적 측면에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보고서를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 2시간 30분 동안 그룹 슈퍼비전에 참석했던 내용은 대략적으로 정리했다. 그 사이 두 건의 상담시간 변경 관련 메시지를 처리했다. 이제는 꼭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저녁에는 심학원 과제를 12시까지 마감해야 하니, 글 쓸 시간이 이때 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뭔가를 항상 하고 있는데, 일이 밀린다.


나에게 지금 여유가 필요하다.

그 여유 속에서 일의 완성도를 높일 에너지와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밀린다는 건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을 가져오게 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빨리 끝맺어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니 완성도가 떨어진다.


역시 나는 마감에 임박했을 때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기착수해서 하나씩 체크해 가면서 챙겨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좋아 보이는 동기의 마감임박형을 따라가려다

일이 밀리고, 슈퍼바이저 교수님께 지적을 받는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야지.

다만 예전처럼 완벽을 추구하지는 말자.


조기착수해서 차근차근해 나가자.



여기까지

횡설수설 마무리하는 상담자의 일기.









*오늘 수퍼비전 내용중 기억할 것

- 관계가 중요한 "일"이 중요한 것인가?

진짜 "관계"가 중요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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