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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염색 빗을 잡았을 때가 언제였을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염색을 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에서 염색을 하신다. 일찍부터 흰머리가 나는 집안 내력을 보아, 아마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염색을 해드렸던 것 같다.
맨 처음 염색을 하게 되었을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빗 혹은 붓 끝에 꾸덕꾸덕한 염색약을 얹어 머리칼의 흰 부분에 챡챡 바르면 흰 부분은 갈색이 되었다가 곧 검은색이 되었다. 아주 새카만 검은색이 된 머리칼은 탐스러워 보였다.
중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염색해드리는 일을 귀찮아 하기 시작했다. 오빠와 나는 서로 미루곤 했다. 우리가 느끼는 귀찮음과는 상관없이 염색을 해야 하는 때는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염색을 해야 될 때면 부모님은 우리 대신 흰머리를 탓하며 부탁의 말을 꺼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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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 년 정도 집 밖에서 살았다. 당연히 그동안은 염색을 해드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살게 되었다. 당연히 다시 염색을 해드리게 되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주뼛주뼛하며 말을 꺼내셨다. 그게 싫어서 나는 씩씩하게 염색약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어서 염색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빗으로 조금씩 가르마를 타고, 조금씩 넘겨가며 촘촘히 약을 도포한다. 30분쯤 걸린다. 다됐다. 얼굴 언저리나 귀에 묻은 염색약을 휴지로 닦아내고 손에 낀 비닐장갑을 벗었다. 핸드폰으로 25분 타이머를 맞춰두었다. 이제 할 일을 다 했군. 잠시 한 숨을 돌렸다. 25분 뒤, 타이머가 울렸다. 어머니는 나를 다시 불렀다.
"염색 다 했는데 왜?"
어머니는 혼자 머리를 감을 수 없었다.
평소에 당연히 혼자 감으시기 때문에 나는 의아했다. 알고 보니 염색 후에는 목욕할 때처럼 서서 감을 수 없다. 그리고 염색약을 씻어내야 하기에 평소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때문에 오랫동안 쪼그려 허리를 숙여야 한다. 오래된 고관절은 그정도까지는 견뎌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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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린 어머니의 등 뒤에서 샤워기의 온도를 맞추고, 샴푸를 적당히 짜 드리고, 뒷머리에 거품을 냈다. 젖은 머리칼 너머로 어머니의 머리뼈가 만져졌다. 머리뼈를 만지는 내 손의 감각이 낯설었다. 머리칼에 남은 염색약을 씻어내려고 손에 힘을 주어 주물렀다. 손을 통해 머리뼈의 모양이 느껴졌다.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낯설지 않은 모양의 머리뼈를 낯설게 느꼈던 내 손이 부끄러워졌다. 열심히 물을 끼얹고 헹궈냈다. 어머니는 자신과 비슷한 모양을 한 내 머리뼈를 얼마나 많이 만졌을까, 수도 없이 닦아주고 빗질해주고 때론 베개나 다른 무엇으로 고아주었을 것이다. 내 머리가 이만큼 클 때까지 무수히 많은 손길이 왔다 갔을 것이다.
콧등이 시큰해져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쪼그린채로 연신 거품을 헹궈내는 어머니는 얘한테 또 번거로운 일을 시켜서 얘가 시큰둥한가 보다 생각하시겠지. 어머니 그건 아니에요. 돈 많이 벌어서 집에다 미용실 의자 사다놔야지, 아니 그보다는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가 미용실에다가 돈 펑펑 쓰게 해야지, 그런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내 손이 어머니 머리뼈를 낯설어하게 내버려 두진 말아야지. 그런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