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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편백나무로 아늑하게 꾸며진 카페가 있다.
생긴 지 오래지 않아 새 것의 반짝거림이 있는 한편 편백나무의 편안함이 있어 자주 간다. 화장실도 요즘 백화점처럼 '신가라' 로 만들어 놓았다. 하여 친구와 내가 처음 화장실에 갔을 때,
"너무 잘해놨네, 빛이 좋아서 사진 찍어도 되겠어"
"그치, 셀카 찍으면 잘 나오겠어" 하며 깔깔거렸다.
사람 눈은 다 똑같은지, 김여사와 김여사의 단짝 친구도 그 카페를 좋아한다.
이제는 단골이 된 두 여사님도 화장실에 처음 다녀왔을 때 너무 좋아서 서로 감상을 나누었다 들었다.
"너무 깨끗하고 물이 따뜻해서 빨래하고 싶더라"
"그치, 집에서 빨랫감 가져오고 싶더라"
저 말이 웃기다가, 김여사의 삶을 떠올리다가, 그 빨랫감 중 사분지 일이 내 것일 거란 생각에 조금의 부채감이 들다가, 나도 나중에 좋은 화장실을 발견하면 김여사와 같은 말을 하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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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는 맞벌이를 했다. 어쩌다 쉬는 평일날에도 쉬는 대신 한가득 빨래를 삶았다.
학교에 다녀와 문을 열었을 때, 빨래 삶은 냄새가 나면 반가웠다. 엄마가 오늘 회사에 가지 않았구나 혹은 빨리 돌아왔구나 하는 뜻이었으므로. 빨래가 삶기는 소리는 더욱 반가웠다. 뭔가가 끓고 있다는 건 지금 집에 사람이, 엄마가 있다는 뜻이므로.
반가운 마음은 문단속, 불조심이라는 당부 아래 잠시 접어두곤 했다. 엄마를 부르기 전 먼저 가스렌지 앞으로 가 뭔가 넘치진 않았는지, 불꽃은 파랗고 붉게 잘 타고 있는지 살폈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안전해 보이면 그 안에 푸실푸실 일어나는 거품과, 노곤한 표정으로 부풀어 가는 빨랫감을 바라보았다. 훈기에 부풀다가 열린 뚜껑 틈으로 들어온 한기에 가라앉는 모양이 꼭 배를 볼록이며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따라 숨을 쉬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졌다.
'아, 엄마는?'
안방 문을 열어보면 엄마가 있었다. 지친 엄마가 빨래처럼 배를 볼록이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아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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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엄마가 없는 집이 싫거나 낯선 적은 없었다. 엄마가 항상 없었기 때문이다. 방과 후에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른스러웠던 게 아니라 그냥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가끔은 엄마가 일하는 게 좋다고도 말했다. 주홍색 투피스를 차려입은 엄마가 예뻤기 때문인지, 아니면 회사일로 힘든 엄마를 위로하려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항상 내가 어른스럽다고 칭찬했다. 내가 정말 어른스러웠다기보다, 엄마 없이도 안전히 일상을 보내야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빨래하고 싶다'는 엄마의 말도 사실은 빨래'만' 하고 싶었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은커녕 저녁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일하는 대신에, 하얀 옷은 하얗게, 파란 옷은 파랗게, 그렇게 예쁘게 빨아 입히는 일만 하고 싶었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밥을 맛있게 해주고 싶어."
엊그제 김여사가 툭 던진 그 말이, 오랜 시간 품어왔던 한 마디였을지도 모른다.
2018. 2. 5.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