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어두고 싶은 것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다. <포레스트 검프> 였을까, <쇼생크 탈출> 은 아닌 것 같고. <아멜리에>였나.
'인생이란 초콜렛 상자 같아서 무엇이 있는지 열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는 이제는 너무 흔해져 버린 이야기가 있었다. 내게 남은 초콜렛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꺼내본 것 중 좋았던 것만을 모아두는 상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어릴 때 옥상에서 키우던 잎이 뾰족하고 통통한 채송화를 몇 송이 넣고 싶다. 방학식 전까지 서둘러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카드와 반짝이 물풀 냄새를 넣고 싶다. 공연 실황 그대로 발매되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카세트테이프도 넣고 싶다. 혈육이 종종 사들였던 누런색 500원짜리 악보 중 <기억의 습작>을 넣고 싶다. 글쓰기 수업 때 나를 칭찬해주셨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그 토요일 오후에 유리를 뚫고 들어온 햇빛을 넣고 싶다. 유월 하순, 비가 온 뒤 해가 지려고 할 때쯤 우도의 공기 그 습도를 넣고 싶다. 그때 페달을 밟았던 자전거도 넣고 싶다. 십일월 밴쿠버 북쪽 어느 시골에서 비처럼 쏟아져내리던 노란 낙엽들을 잔뜩 넣고 싶다. 여간해서는 잘 뭉쳐지지 않던 가루눈도 넣고 싶다. 오사카 어디선가 마셨던 생맥주를 한잔 넣고 싶다. 타이베이 다안구의 한 월남국수집에서 먹었던 빨갛고 신 국수를 한 그릇 넣고 싶다. 올해 초 몇 킬로나 삶아먹었던 홍가리비를 한 냄비 넣고 싶다. 정캐서린언니와 함께 들었던 작곡 수업을 한도막 잘라 넣고 싶다. 왼손잡이 장구 선생님이 궁편에서 채편으로 보내던 오목한 공기를 한 줌 넣고 싶다.
2017. 10. 9.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