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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Dec 01. 2018

70과 30, 그 중의 30은 여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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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암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공부는 암기였다. 공부하기 싫었던 나의 자기 합리화였을 뿐.


하여 지금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암기를 시킬 때마다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아 얼마나 싫을까,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등등.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그러나 공부는 암기다. 어쩔 수 없다.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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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에게 과제를 주었다. 열다섯줄짜리 이야기를 외우는 것이었다. 일주일간 수업 짬짬이 이야기를 함께 외웠다.

아유 싫어. 힘들어. 하던 아이들은 세줄에서 다섯줄, 여덟줄, 그렇게 슬슬 이야기 모두를 외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발표날. 아이들은 모두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해주었다. 모기만한 목소리였지만,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눈동자를 다급히 굴리며 다음 단어를 떠올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감동휴먼터치스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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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힘들었을텐데. 기특하다 기특해.’

발표가 모두 끝나고 기특한 마음에 상으로 마이쮸를 줘야지! 하고 마이쮸를 찾으러 교실을 나갔다.

그리고 들어오려는데 참새처럼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 뒤에 숨었다. 내가 없는 사이 저희들끼리 칠판 앞으로 나가서 외웠던 것들을 읊고 있었다.


혼자 발표할 때는 모기만한 소리로 소근소근 말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서로 질세라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었다. 자기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또 우스워 더 큰 목소리로 깔깔 웃어제낀다. 그리고 아깐 분명 혼자서는 부끄럽다며 동작도 안했는데, 자기들끼리는 누가 더 멀리 손을 뻗쳐내나 경쟁하듯 몸을 움직인다. 게다가 표정은 거의 깐느 수준이다. 아깐 분명 로봇연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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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 숨은 채로 약간 배신감을 느끼려다가, 그러기엔 요녀석들이 지나치게 귀여워 나도 마이쮸를 한껏 흔들며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쌍수를 들고 나를 아니 마이쮸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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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운 자리에 아이들의 새로운 목소리와 움직임이 그득 차는 것을 보며, 그동안 늘 내가 나로서 상대에게 100을 채워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그저 내 어리석음, 혹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 여백을 줄 줄 알아야 하는데..


뭔가를 조물락거릴 여백을 주면 새로운 것이 나온다.

70만 주고 30은 꼭 비워둬야지. 대신 70의 밀도를 높이자.

그러니 얘들아, 다음달에는 열여섯줄짜리 이야기를 외워보자꾸나! 마이쮸는 미리 준비해둘께!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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