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싸패를..

'좋은' 사람 말고, '그냥' 사람!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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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서 부업을 좀 해볼까 싶어서 꽃을 한 아름 샀다.

라넌큘러스, 작약, 튤립, 카라 같은 꽃들과, 몬스테라, 기타 바나나 잎 같은 잎사귀를 잔뜩 사서 잔뜩 찍었다.


일주일의 작업이 끝나자 초반에 샀던 꽃은 거의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후반에 산 꽃은 만개의 정점에 다다라 있어 지금 아주 호화스런 모양이다.


촬영을 모두 끝낸 뒤 꽃을 바라보니 강렬한 조명에 나와 같이 눈뽕을 맞은 꽃들에게 동지애가 느껴진다. 아니지, 내가 일방적으로 혹사시킨 것이니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 잎들이 그 열기를 어찌 견뎠을까. 미안한 마음에 꽃병에 새초롬히 꽂혀 물을 쪽쪽 빨고 있는 꽃들을 괜히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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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다 끝난 지금에야 아련하지만, 사실 지난 일주일간은 꽃이 지긋지긋했다.

매일 하루 다섯 시간씩 내내 쪼그려서 꽃을 찍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지치는 일이었다.

눈을 찌르는 거센 조명을 견디는 것은 둘째 치고, 나보다 더 빠르게 사라져 가는 꽃의 생기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시간도 모자라고 내 체력도 모자랐다. 시간이 다르게 신선도를 잃어가는 생굴 같은 꽃들과 나의 체력이여..

그러니 꽃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였다.

'아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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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촬영을 다 마친 뒤, 간이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돌아서자마자 꽃들은 다시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와.. 어쩜 이렇게 전환이 빠르냐. 이런 게 인간의 마음이구만..' 하며 꽃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 피었다고 구박했던 라넌큘러스, 너무 안 피었다고 구박한 카라, 너무 크다고, 너무 작다고, 너무 목이 굽었다고, 너무 목이 꼿꼿하다고 구박했던 모든 꽃들이 촬영이 끝나자 같은 이유로 예뻤다.


'얘는 이렇게 활짝이 피었네',

'얘는 아직 봉오리니 오래도록 볼 수 있겠네',

'어쩜 이렇게 애기 머리통만큼 꽃송이가 클까',

'얘는 앞으로 굽어 있어서 더 잘 보인다'


꽃들은 자기들 앞에 얼굴을 바짝 대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바꾸는 나를 보고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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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마음먹기 나름' 이라는 명제를 이렇게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로 느낀다.

지나온 많은 사람이나 일, 상황들도 저 꽃 같았던 건 아닐까. 그냥 그 사람이고 그 일이고 그 상황이었던 건데.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형편에 맞춰 싫으니 좋으니 했던 건 아닐까. 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정말 나더러 사이코패스 내지는 또라이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거..


'어? 그렇다면 내게 사이코패스와 또라이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겠네. 나 같은 그냥 그런 사람이었겠네..'

까지 생각이 닿자,

'아.... 야.... 이거 맞는 말 같긴 한데... 음... 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갑자기 다시 화가 나려고 한다. 역지사지가 이렇게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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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되기' 가 삶의 목표였는데, 참으로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사람 되기' 로 목표를 수정한다.

사람이 되어보자.

꽃도 시들고 사람도 시든다. 시들어버리기 전에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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