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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때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을 아직 하지 못(?)한 딸을 보는 엄마를 달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평행우주 속에 못난 나를 많이 만들어두는 것이다.
"김여사, 그때 내가 거기에 안 가고 여기에 남아있었으면..."
"있잖아, 그때 내가 고생을 좀 했으니까 지금 철이 좀 들었지. 안 그랬음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살았을걸"
"그러니까 그때 그 공부 안 했으면 어땠겠어?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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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하도 털어대는 입에 끄달려, 김여사는 평행우주 속 몇몇 딸들을 상상해본다.
1번 그때 안 간 딸
2번 그때 고생 안 한 딸
3번 그때 그 공부 안 한 딸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하면서도 딸이 소개하는 대로 그 여럿의 낯빛을 살펴본다.
1번은 얼굴이 어두캄캄하니 마음의 그늘이 심해 보이고
2번은 눈동자가 달그락달그락하니 세상모르고 까불겠다 싶고
3번은 울그락불그락하니 고집이 세 보인다.
"그래, 그랬겠다. 지금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지."
김여사는 GG 치듯 한마디를 뱉고 당신 방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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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고맙다 평행우주 속 나들아.'
주섬주섬 자리를 펴고 누워 눈을 감으니 온통 검다. 검은 우주 속 1번부터 십몇번의 내가 나를 쳐다본다.
찔려서 잠이 도망간다. 평행우주 속 열댓의 나를 더 깎아내릴 일이 없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