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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Jun 21. 2019

대만의 토마토국수, 나의 동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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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면 뭐랄까,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나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식날 사준 원피스에 달린 빳빳하고 하얀 깃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일텐데, 내게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가장 강렬하게 꺼내주는 것은.


토마토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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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국수, 토마토국수.. 단어를 읽을수록 괴식의 스멜이 난다.

멸치다시물에 말아 놓은 국수사리 위에 토마토조각 올려 놓은 그런 거 아니고. 대만에서 파는 '베트남식 토마토 국수'.


10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퇴직한 딸은 6개월 쯤 온갖 학원을 다니며 잡기에 집중하다가 결국은 10년 전 졸업하지 못하고 내팽겨쳐둔 대학교를 다시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학기를 다니다가 뜬금없이 대만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러가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여름' 방학 때. 내가 왜 그랬을까? 뭐 이렇게 되려고 그랬겠지.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엄마도 나의 대만행에 함께 하게 되고, 이러쿵저러쿵한 사연이 덧붙여져 엄마는 내가 머무르는 두달 가량을 모두 함께 하기로 했다. (음?) 그리고 엄마도 어학원에 등록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음???) 서른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는 매일 함께 등하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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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다. 혹서. 대만의 하절기란 점잖게 말하면 혹서고, 불교식 세계관을 빌면 화탕지옥이다. 

그러나 혹서라는 단어에는 더위를 관조하는 듯한 거리감이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그 태양 아래에 서 보자! "혹서입니다" 라고 건조하게 말할 수 없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내 발로 여길 왔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므로 화탕지옥이 적합한 명칭이다.


더위는 땀만 빼는 것이 아니라 입맛도 빼간다. 땀과 입맛이 사라진 우리에게는 구내염과 처지는 몸뚱이만이 남았다. 좁고 더운 집에서는 무엇을 해먹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엄마와 내가 4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때는 4성조와 한자와 고군분투하느라 진까지 빠져있었다. 당장 입에 뭔가를 집어 넣지 않으면 그대로 녹아내릴 수 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 게다가 누가 대맛이 맛집 천국이라 했는가. 대단히 까다롭지 않은 우리네 입맛임에도 그 평균치를 만족시키는 식당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늘은 밥을 어떻하지?" 

메뉴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어학원 주위의 식당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달고 비싼 일식덮밥, 향식료를 쏟아넣은 대만식 볶음밥, 비싸고 특징없는 퀘사딜라와 파스타.. 우리는 더욱 지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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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배움이 있다. 

무수한 실패와 간혹의 성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취향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의 음식, 혹은 어떤 재료, 어떤 조리법이 우리의 입맛에 맞을 확률이 높을지를 조금 더 쉽게 계산할 수 있었다. 축적된 경험치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한 베트남 식당을 선정했다.


"저긴 어때? 베트남식이야."

허름한 식당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국수를 좋아하는 엄마는 뜨거운 태양빛에 눈을 살짝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럼 쌀국수를 먹을 수 있나? 난 고수 싫은데."

"고수는 빼달라고 하면 돼."

그 말이 안심이 되었던지, 엄마는 에어컨 바람이 쏟아지는 식당 안으로 얼른 발을 내딛었다.


첫 방문이니만큼 가장 기본인 쇠고기 쌀국수를 시켰다.

오왕 굳. 엄마도 호로록 호로록 잘 드셨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큰 고민없이 '월남쌀국수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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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하얀색 쇠고기 쌀국수를 세번쯤 먹었다. 그러나 똑같은것 세번쯤 먹으면 지겹다. 

내 그럴 줄 알고 그 세 번 동안 다른 사람들이 뭘 먹나 열심히 관찰해뒀다.

'뻘건걸 자꾸 시키네 사람들이..'

그리고 주인에게 추천 메뉴를 묻고, 내가 본 음식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것은 '빨간매운새우국수'였다. 

"엄마, 실패할 수도 있으니 엄마는 일단 쇠고기 쌀국수를 먹어. 내가 빨간 걸 시켜볼께."

나는 성인인 딸로서 엄마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어필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엄마가 든든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딸깍" 

식탁 위에 빨간 쌀국수가 올랐다. 주황색새우등 너머로 빨간 토마토가 보인다. 뭐? 토마토?

나야 토마토달걀스크램블도 종종 해먹는 신여성이지만, 토마토쌀국수는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용기내어 한입. 

'아니 이 맛은! 미미!'

너무 맵지 않고 달큰한데 새콤하고 시원한 맛.

"어머니! 얼른 잡솨봐!"


엄마는 슬그머니 반숟갈쯤을 떠 드시더니, 이윽고 광속의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다행이다 싶어 나는 토마토쌀국수를 엄마의 쇠고기 쌀국수와 바꿔 드렸다. 

엄마는 "에그. 너 먹어야 되잖아." 하시더니만, 1초도 안되어 호로록 호로록.


그 뒤로 우리는 빨간매운국수를 여섯번쯤 먹었다. 우리끼리는 빨간매운국수라는 대만식 이름말고 토마토국수라고 불렀다. 토마토국수에는 새우토마토국수, 생선토마토국수, 이렇게 두 가지가 있어 번갈아 시키다 나중에는 새우토마토국수로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는 튀긴만두같은 '짜조'도 같이 시켰다. 초록색 잎에다 튀긴 만두같은 것을 싸서 피쉬소스가 들어간 달달한 소스에 찍어먹으면 우리를 끈덕지게 괴롭히던 더위도, 중국어도, 모두 아득히 멀어지곤 했다. 우리는 배불리 먹고, 또 한접시를 시켜 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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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자와 4성조에 얻어터지고, 더위에 KO 당하면서도 우리는 정해진 기간을 모두 채웠다. 아직도 한더위인 9월의 대만을 떠나며, 우리는 꼭 중국어와 더위를 이기고 온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집에서 우릴 맞이한 오빠가 눈빛만 형형한 낭인들 같다고 했을때야 우리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지만) 


엄마는 추울 때 대만의 더위를 떠올렸다. 엄마는 더울 때 대만의 더위를 떠올렸다. 엄마는 우리의 아담한 집을 보며 정말로 귀여웠던 대만의 집을 떠올렸다. 엄마는 열 개가 넘는 냄비에 요리조리 음식을 할 때마다, 대만에서 사용했던 단 두 개의 냄비를 떠올렸다. 엄마는 아들이 장 봐 온 맥주를 보며 금요일마다 마시던 타이완 과일맥주캔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엄마는 엄마의 모든 이를 내놓으며 빛나게 웃었다.


덥다고 말할 기운도 없도록 더웠던 대만의 거리를 한발짝도 빼놓지 않고 함께 걸은 엄마. 좁고 열악한 집과 그 구조, 낯선 식재료들 속에서도 어떻게든 먹이겠다는 의지로 당신의 지혜와 체력을 모두 꺼내 한국식 요리를 만들어 내던 엄마, 고학의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었던 엄마, 주중의 고된 학업과 생존 게임을 겨우 버텨냈음에도, 주말이면 이국의 향취를 느끼러 반드시 여행을 떠나야 한다며 주먹을 불끈쥐던 엄마. 

엄마가 없었으면 나는 이 더위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주는 자괴감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 저 태평양을 접한 어느 바닷가의 반짝이는 조약돌과, 몇천년의 시간이 쌓아 만들었을 협곡의 줄무늬와, 붉은 등이 가득한 구비진 골목길의 아름다움은.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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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들이키듯 먹었던 음식, 토마토국수. 

한국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어 결국 토마토라면이라도 끓여 그 그리움을 달래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는 내 곁에 여전히 있어 그립지 않다. 

부디 엄마가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서, 내가 그리워 할 것이 언제까지나 오직 토마토국수 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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