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신어, 양말. 생은 꽤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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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자.. 목.. 목이 중요하댔어.. 발목, 손목, 목, 무릎, 어깨.. 뭐 이런 부분 말이야.. 다치기도 쉽고 바람도 잘 든댔어. 그러면은 보자.. 발목은 양말을 이렇게 신어서 좀 단디 보호를 하고..'
어깨너머로 들은 '목'이며 혈자리, 경락 같은 것들을 짚어보다 보니 내 참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겨울용 스타킹은 무슨.. 스타킹이 왜 필요해?' 하는 표정으로 맨다리에 교복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이제는 상상조차 안된다. 바로 죽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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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걱정 다 쓸어 담은 표정으로 "뭐 다 죽고 헤어지고 없어지고 그런 거 아니겠어. 영원한 게 어딨겠어."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았던 중고등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타킹 없는 겨울은 영원할 줄 알았지.
그처럼 지금의 나도 풍성한 머리칼을, 곧은 척추를, 시리지 않은 이빨들을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삶은 덧신 양말처럼 짧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목양말처럼 지긋하게 길다.
늘 뽀얗고 탱탱하지도 못하다. 색은 누르스름해진다. 종아리를 한껏 조여 붙잡고 무릎 너머의 세상을 호시탐탐 노리는 고무줄도 점점 슬금슬금 늘어나 어물어물 발목을 향해 흘러내린다.
_ 아, 그렇게 목양말이 다시 발목양말이 될 때가 되면, 그땐 정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삶이 덧신 양말처럼 짧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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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을 모르니 오늘의 자리가 발목께 인지, 종아리 언저리인지 어쩐지 가늠할 수도 없다. 그저
목양말 같을 수도 있는 긴 생을 위해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근손실을 방지할 것을 다짐,
덧신 양말 같을 수도 있는 짧은 생을 위해선, 오늘 더 웃기로 결심.
_ 그래서 오늘 엄마랑 낄낄거리며 청도 반시를 노나 먹음.
그렇게 내 양말에다 귀여운 추억을 수놓기로 한다.
마음이 시릴 때면 추억을 꺼내 신을 수 있도록, 데운 마음으로 조금 더 멀리까지 자전거를 밟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