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 샤워

아누쉬카 샹카, 언제고 한번 더.

by 릴리슈슈


고등학교 때였나, 윤상 씨가 세계 음악을 소개해주는 라디오 코너가 있었다.

소위 제 3세계라 불리는 지역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남미나, 아프리카, 중동 같은 곳이었다. 그때 '시타르' 라는 악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현악기지만 타악의 느낌이 있고, 울림이 풍부했다. 우웅우웅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몸 너머 이 공간 전체가 느껴졌다. 거 참 신비한 소리구만. 요즘 같으면 유뷰트에 엔터 한 번이면 많은 음원을 찾을 수가 있지만, 당시엔 그런 것이 없어 어렵게 찾은 음원들을 소중하게 듣곤 했다.


신비한 시타르 소리는 그 뒤로도 종종 찾아들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지쳐있을 때면 저절로 생각이 나서 찾아 듣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기심에 검색해보았는데, 라비 샹카의 딸이었다. 조지 해리슨에게 시타르를 가르쳐준 전설의 레전드, 그 라비 샹카. 헐퀴.


라비 샹카의 딸 아누쉬카 샹카는 9살 때부터 시타르를 연주했고, 13살부터 아버지의 투어와 음반에 참여했다. 81년 생이니 음악인생이 벌써 25년째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겠구나 생각하고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엘리베이터에서는 인도의 향 냄새가 났다. 조금 더 설레게 되었다.



시타르, 솥뚜껑을 닮은 타악기 '행', 태평소와 닮은 인도 전통 관악기 '쉐나이', 콘트라베이스와 건반, 드럼으로 구성된 연주회였다. 한 시간 반 동안 때론 미칠듯한 스피드의 속주로, 때론 고요하지만 풍성한 울림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의 현란한 테크닉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 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시타르와 행, 쉐나이 소리 자체의 힘이 나는 더욱 놀라웠다. 소리가 몸속으로 들어와 나선형으로 감겨 돌아가며 엉킨 것들을 풀어내는 기분이었다. 결을 고르고, 묵은 것들을 떨어내는 소리였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샤워하듯 듣고 공연장을 나섰다. 어딘가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분명 시타르와 행, 쉐나이 등의 소리 때문이었다. 영혼이 어디 탈수기에서 탈탈 털린 듯 홀가분해졌다. 맑고 후련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앵콜곡을 되짚어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 영혼의 먼지를 곱게 털어준 그들을 잘 기억해두고 싶었다. 쫀쫀하게 잘 짜여진 카펫 위에 아누쉬카 샹카와 그녀의 악사들이 마치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양, 한 음 한 음 소중하게 연주하던 사람들, 뽀얗게 웃던 얼굴들, 동네 아저씨같은 쉐나이 연주자가 손에 들고 있던 작고 귀여운 나무 실로폰 같은 것들을 말이다.




마지막 앵콜곡이었던 <Say Your Pr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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