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_ 초록 타탄 체크 가죽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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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타탄체크 가죽 가방은 내 방 벽걸이 같은 자리에 몇 년째 걸려있다.
예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샀으니 산지 벌써 3년 가까이 됐는데, 단 한 번도 들고나간 적이 없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그동안 안 하던 스타일이나 어릴 때 갖고 싶던 아이템을 사는 것이 나만의 유행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 초록 체크 가죽 가방이었다. 어렸을 때 무척 갖고 싶어 했던 가방인데, 지금은 나오지 않는 제품이라서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뒤져 상태 좋은 것을 어렵게 구했었다.
크고 묵직한 가방이 거대한 박스에 담겨 우리 집에 왔었던 날을 기억한다.
박스를 뜯어 두터운 가죽 손잡이를 손으로 잡아 올려 짙은 초록과 남색이 교차하는 가방의 다섯 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 가방을 들고나갈 일은 없겠구나.'
가방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랬을까? 글쎄..
그것보다도 이 초록색 가방은 지금의 나보단 어린 날의 내게 더 어울렸을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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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다녔던 회사를 나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삶을 산지 3년 째다.
그래서 그런지 올 십이월은 여타의 십이월들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지난 3년의 결산을 함께 하게 된다.
지난 3년은 한풀이하듯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잔뜩 해보는 시간이었다.
해보고 싶었던 것 몽땅 해보면, '와! 이거야! 이거시 내 인생의 온니원!'
하며 하고 싶은 일이 고딕체로 빵빵 드러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유영하는 기분이다. 왜지?
경험에 대한 정리가 없어서 그런가 싶다. 뭘 하나 끝내면 다른 거 하러 가느라 바빴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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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은 내가 어떤 결로 살아왔나 정리를 좀 해야겠다 싶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 중 무엇을 계속 가져갈 건지, 무엇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하고 멈출 건지 분류를 해야겠다.
그럼 저 초록 타탄 체크 가방도 계속 걸어둘 건지 아니면 내 손을 떠나보낼지 가늠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