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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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는 '올개닉' 화장솜이 다 떨어졌다.
화장은 하는데도 돈이 들고 지우는데도 돈이 든다. 돈만 드나, 시간도 든다. 여러모로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옛말에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허다' 이른다.
그렇담 '대강하는 화장보다는 좀 더 공을 들여보자' 싶어, 공들여 번 돈으로 '약간 좋은' 화장솜을 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이야, 이거보다 더 좋은 건 얼마나 폭신할까? 싶은 마음에
'이번엔 정말 비싼 화장솜을 사보는 거야! 와하하하!'
하고 드럭스토어의 문을 대감마님처럼 위풍당당하게 열어젖힌다.
하지만 정작 매대 앞에서는 늘 g그램 대비 가격을 셈하기에 바쁜 외거노비가 되고 만다.
'아니, 닦아내고 버리는 것에 그렇게 돈을 쓸 이유가 있는가?'
하며 외거노비 주제에 무슨 선비처럼 군다.
그렇게 쬐깬한 과소비 허용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또 '약간 좋은'에서 멈춰 서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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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대며 돌아다녔던 한 해였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알 수가 없어, '이번 달은 좀 가만히 있어봐야지' 작심했다.
주말의 일들은 물론 평일 퇴근 후에 하던 일들까지 거의 다 멈췄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는 요가 또는 수영이 거의 유일한 일과로, 나머지 시간은 최선을 다해 무용하게 보냈더니 뭔가 가만_하다.
가만_ 하다.
'이것도 해야 돼! 쿠아아아아' '저거는 안 할 거야? 쿠아아아아' 하며 욕망의 괴수들이 쿵쾅거리며 헤집고 다녀 늘 먼지투성이였던 마음속 미세먼지 농도가 조금은 진정된 기분이다.
쌓아야 하는 것, 채워야 하는 것들에 뒤쫓기다가 문득문득 멈춰 서고 싶었지만, 쫓기는 것도 관성이라 쉽게 멈추고 진정시킬 수가 없다.
'왜 안되지? 내가 욕심이 너무 많나? 내가 내 컨트롤을 잘 못하나? 내가 욕구불만인가?'
원인을 분석하는 일은 자아성찰을 넘어 자기학대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나는 또 멈추려 하는 욕망의 괴수를 마음속에 하나 더 들일뿐이었다. 아, 쓰기만 해도 속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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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돈을 쓰면 해결됩니당! 참 쉽죠?"
요가를 등록했더니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요가 쵝오! 킹왕짱! 이라기보다,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욕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면,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을 향해 나를 힘차게 밀어낼 장치를 만들어두면, 관성을 벗어나는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장치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뼈와 영혼을 갈아 넣어 찍어낸 '돈'이 아니겠는가.
"와, 선생님! 돈을 내었더니 안 갈 수가 없어용!"
욕망은 나를 움직이고 성장하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조절할 수도 없는 욕망은 폭주하는 기차처럼 나를 어디로 데려가버리고 만다. 욕망까지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거슨 성인聖人의 경지이겠지.
성인聖人은 커녕 가끔은 성인成人 같지도 않아서, 스스로 욕망을 조절할 수 없으면 도움을 받아 잠시 멈춰보기라도 하려고 한다. 화장을 지우는데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욕망을 덜어내는데도 아까움 없이 비용을 지불하고 멈추어보아야지. 가만한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