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사이

질척대는 마음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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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아했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내가 해외에 머물러 있을 때 결혼을 했다. 친구가 일찍 결혼을 하는 것도 놀랐지만 친구의 결혼식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남편도 만났다. 좋은 사람 같아서 좋은 사람인 내 친구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일 관계로 지방으로 내려가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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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누군가의 번호가 바뀌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일 다 하는 것처럼 바쁘게 굴었던 나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마음먹으면 친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선뜻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주 좋아했던 친구인데도 말이다.

서로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과 관계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예전의 모습과 관계이길 바라는 나의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할까 두려운 나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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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꿈에 그 친구가 나왔다.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와 친구의 언니가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친구를 발견하고 나는 웃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던가. 내 말 끝에 친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 사이가 좀 엉성하잖아.." 완곡한 거절이었다.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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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하잖아, 엉성하잖아...' 일어나 앉아 그 말을 되뇌었다.

꿈은 깨어나면 금방 잊어버려서 좋은 꿈은 기록해두곤 했는데, 저 말은 밤 11시가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기억난다. '사이가 엉성하다' 는 말이 문법에나 맞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엉성-하다


i

1. 꽉 짜이지 아니하여 어울리는 맛이 없고 빈틈이 있다.

2. 살이 빠져서 뼈만 남을 만큼 버쩍 마른 듯하다.

3. 빽빽하지 못하고 성기다.

4. 사물의 형태나 내용이 부실하다.


ii

1. [북한어] 서로 꼭 달라붙지 못하고 벌어져 사이가 뜨다.

2.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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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 맞네.

그중 북한어 뜻 1번이 제일 알맞다. 이제 평양을 멀다고 하면 안되갓구나 하는 시절인데 너와 나는 이렇게 사이가 떠있다. 진작에 받아들여야 할 것인데도 나는 네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이 엉성함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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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통해 해야 하는 공부가 마쳐지면 자연히 헤어진다고들 하던데, 그게 아직도 마음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오늘따라 마음이 더 질척거리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 탓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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