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뭐야?

by 릴리슈슈

내가 꼬마였을 때, 나는 성당열심러였다.

성당에는 좋은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공부도 잘했고, 항상 반장 같은 것을 했으며, 동생들과도 잘 놀아주었다. 그런 언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언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와의 놀이는 항상 색달랐다.

기존의 놀이가 아닌, 언니가 고안한 놀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놀이는 '지구특공대' 였다. 성당 곳곳의 화단이나 화분의 벌레들을 조사해서 익충은 살려두고 해충은 제거!하는 일이었다. 놀이를 개시하기 전, 언니가 그 명분을 설명해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인간들 때문에 지구는 오염되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야 해." 나는 언니의 엄숙한 표정을 따라 지으며 비장하게 성당 교리실을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화단의 벌레들을 조사했다. 다행히 해충은 발견되지 않아 살육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화단에서 속닥거리던 우리가 수녀님께 발견되는 일은 있었다. 수녀님은 우리의 설명을 들으시곤 진지하게 응원해주셨다. 하지만 애매한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긴데 차마 웃을 수 없으셨기 때문인 듯하다. 웃음을 참음으로써 소녀들에게 든든한 정서적 지원군이 되어주신 수녀님께 지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언니가 웅변하듯 힘주어 이야기했던 놀이의 명분, 격하게 동의했던 나와 나의 표정, 빗속을 뚫고 조사에 집중했던 우리의 열정, 그 앞에서 거품을 품은 채로 초록색 줄기에 매달려 있던 거미, 호랑이가 시집을 갔는지 비구름 사이로 금세 해가 드러났던 그 날의 날씨. 화단 흙에서 올라오던 아지랑이 같던 지열..

이 놀이의 풍경이 떠오른 건 취업을 준비하는 와중이었다.



이 놀이는 여러 번 반복되지 않았으나, 명분이라는 것은 내 삶에서 여러 번 그 역할을 해왔다.

20대 초반에는 삶을 사는 데에 명분이 필요했다. 삶에 대한 명분을 찾고서는 일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다. 일에 대한 명분을 찾고는 십 년을 줄곧 일했다. 일을 마쳤다.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서는데 영 답답했다. 사회생활을 그리 오래 했는데도 이렇게 더디고 더듬거린다 싶었다. 한치의 성장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몇 번을 토닥였다. 그 끝에 발견한 건 내게 새로운 명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삶을 계속 살아야겠다고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작은 명분이었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아진다면 그게 사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아주 손톱만큼이라도. 그럼 내일은 좀 더 좋아지겠지? 그럼 살만하겠네.' 였다.

일을 시작할 때는 거대한 명분이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일을 마칠 쯤엔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나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 그 후로 6개월을 쉬고, 1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지금.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어린 나는 지구를 위해 흔쾌히 비를 맞고 운동화에 흙을 묻혔다.

나는 다시 비를 맞고 흙을 묻히러 가야 한다. 나는 이제 무엇이 있어야 흔쾌히 비와 흙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저 언니는 멀리 미국에 가있고, 나는 물을 곳이 없어 가만히 나를 앞에 두고 자꾸만 묻는다. "그러니까 내가 지켜야 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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