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덕후시점
덕질하다가 알게 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매횽'이다. '매횽'은 '매니저형'의 줄임말이다.
'매횽' 아니고 "저 '매형'에게 물을 주어라" 라는 당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이다. '매형'은 '매화'를 뜻한다. 매화가 너무 좋아 형兄, 군君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매화가 원체 선비의 꽃이긴 하나 그래도 무생물에게 사람의 호칭을 붙인 것은 분명 전지적 덕후 시점이다. 병환으로 초췌했을 때는, 매화에게 보이기 민망하니 매화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는데. 필시 덕후력으로 내 윗길에 계심이 분명하다.
퇴계 선생님과 매화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된 건 4년 전 적어둔 메모 때문이었다.
내 전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시구를 보고 메모 정리를 멈췄다. 이렇게 기막힌 시를 적어두었었구나 감탄하며 검색해보니 저 시구는 퇴계 이황 선생님이 아니라 중국 남송시대 시인 사방득의 것이었다.
天地寂寥山雨歇 천지가 적막하고 산에 비는 오락가락 하는데
幾生修得到梅花 몇 삶을 닦아가야 매화의 경지에 이르려는가.
_ 사방득謝枋得 <무이산중武夷山中>
옛 선비들은 동짓날에 하얀매화 81송이를 그려 창에 붙여 놓고 매일 한송이씩 붉게 칠해 홍매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81번째 매화에 붉은색을 입히고 그림을 떼낸 뒤, 창문을 열면 그림과 같이 매화가 한가득 펴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정성을 담아 매일 매화를 기다리니 안그래도 예쁜 매화 얼마나 더 이뻐보일까. 덕질을 해보니 그 마음 알겠다. 애정을 쏟을수록 예쁜 구석이 더 속속들이 드러난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진다. 회전문에 갇히는 셈이다. 단원 김홍도 선생님도 그림 팔아 3000 번 걸로 2000은 매화분재 사고, 800은 친구불러 매화보며 놀고, 남은 200으로 식량과 땔감을 샀다능..
매화는 봄의 가장 처음에 핀다. 우리 동네에는 매화가 많지 않은데다, 매화가 필 쯤은 아직 추위가 남아있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나치곤 했다. 매화도 가득 피면 소금을 뿌려놓은 듯 보일까? 달빛처럼 흐뭇할까. 조선 후기 화가인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를 보면 그런 모양이다. 갑자기 섬진강변의 사람들에게 막 질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