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동생을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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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식 날이었다.
왕십리에 살던 우리는 잠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여동생과 나는 방학식이 끝나면 학교 정문에서 만나 잠실의 새 집을 찾아가야 했다. 방학식이 끝났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잠실을 향했다. 나는 잠실을 향했다. 나는 잠실을.. 나만?
한참 동안 지하철을 타고 가다 동생이 떠올랐다. '어? 동생은 어디 있지? 아!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황급히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탔다. '어떡하지. 동생을 놓고 왔어, 동생을 놓고 왔어,'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지하철은 무심히 제 속도로 달려갔다.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다. 서둘러 학교 정문으로 갔지만 동생은 거기에 없었다. 학교 주변을 한참 둘러보았지만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의 얼굴과 엄마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지만 둘 다 거기에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 나는 울고 싶었다. 정말로 울고 싶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잠실로 향했다. '하느님 하느님, 동생을 제발 돌려주세요. 동생이 돌아온다면 정말 착하게 잘 할게요.' 사정없이 달리는 지하철 속에서 나는 하느님께 쉴 새 없이 사정했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집 앞에 도착했다. 울상이 되어 대문을 열었다. "엄마!"
거기에는 동생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엄마와 함께 앉아있었다. "오빠! 오빠 먼저 가면 어떡해!" 삐죽거리는 그 목소리에 모든 긴장이 다 풀렸다. 울상에 안도가 섞인 내 얼굴을 본 엄마가 의아해했다.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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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식 날이었다.
왕십리에 살던 우리는 잠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오빠와 나는 방학식이 끝나면 학교 정문에서 만나 잠실의 새 집으로 가기로 했다. 방학식이 끝나서 나는 약속대로 학교 정문으로 갔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빠가 오지 않았다. '아이참, 오빠가 먼저 가버렸나?' 나는 엄마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친구가 일하고 있던 성당 사무실로 갔다. 마침 엄마가 거기 있었다. "엄마, 한참 기다렸는데 오빠가 안 왔어, 먼저 가버렸나 봐." 엄마와 나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잠실 집으로 왔다. 아직 서늘한 새 집에 막 불을 때고 몸을 조금 녹이려는 차에 대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오빠를 향해 말했다. "오빠! 오빠 먼저 가면 어떡해!" 딸린 동생 없이 혼자 편하게 왔으니 싱글벙글 해야 할 오빠의 얼굴이 영 엉망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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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 이 얘기를 오빠에게서 처음 들었다.
아니 일이 벌어졌던 그때 이미 다 들었겠지만,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겐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오빠에게는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그때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생생히 떠오른다고 한다. 가끔 내 부탁에 귀찮아하다가도 "기도해서 돌아온 동생인데, 잘해줘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그리고 또 가끔은 너무 귀찮아서 "기도를 잘못했나.."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오빠의 등짝에 거친 스매싱을 날린다.
상황이며 이유야 어쨌건 간에, '기도해서 돌아왔다' 는 말에는 이상한 울림이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려준 사람이 있고, 그 기도를 들어준 절대자가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현실을 만들어 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창조된 현실이라는 것에 기묘한 마음이 든다.
'기도해서 돌아온'
그래서 가끔 혼자 저 말을 떠올린다. 나를 위해주었던 사람들과 나를 지켜보았을 절대자를 떠올린다. 나와 그들의 마음을 떠올린다. 따뜻했던, 때론 간절했던 마음들을 느낀다. 흐뭇해지거나 아릿해진다. 다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