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손가락의 작은 애벌레

by 릴리슈슈


나는 새끼손가락이 조금 짧다.

원래 손이 좀 작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새끼손가락은 비율로 따져 보았을 때도 조금 작다.


어릴 때 우리 집 구조는 조금 특이했다. 안방과 거실의 높이가 달랐다. 안방과 거실 사이의 벽에는 유리 창문이 달려있었다. 안방에 앉아서 거실에 서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었다. 유리창문은 직사각형이 세로로 서 있는 모양이었다. 낡은 나무 창틀에 들어선 유리창문은 크기가 크지 않았다.


거의 모든 오빠들이 그렇듯, 오빠는 동생이 너무 귀엽다는 이유로 갖가지 장난을 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저 이유는 믿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생을 달래려는 말일뿐이다. 물론 그 말로 달래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말조차 꺼낼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장난도 있었다. 사실 오빠는 억울할 것이다. 그냥 장난이었으니까. 흔한 놀림에 유혈사태가 빚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도 남매는 함께 집에 있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남매뿐이었다. 심심한 오빠는 넓은 집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동생을 놀리기 바빴다. 동생은 네 살 터울의 오빠를 따라잡을 수 없어 쫓아다닐 뿐이었다. 슬슬 약이 오르는데 저 오빠란 인간은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는 있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밌는건지 여하간 계속해서 놀려댔다. 뭐라고 놀렸기에 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기껏해야 '바보 똥개'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는 최고로 모욕적인 언사였을 것이다. 화가 나서 안방에 들어가 있는 나에게 오빠는 굳이 그 유리창을 똑똑 두드려 나에게 '메롱메롱'을 날렸다. 양 볼에 검지 손가락을 각각 야무지게 찌른 채로, 그리고 그 손을 앞뒤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아 지금 생각해도 치욕스럽다. 그러니 당시 나의 대폭발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오른손에 모든 분노를 실어 유리창 너머의 오빠를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세상이 일시 정지된 듯 일순간 집안은 고요해졌다가, 내 손의 피가 선명하게 눈으로 들어오며 집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손에서 흐르던 피를 보며 울던 나와 그 모습을 발견한 오빠의 놀란 표정과 사방으로 흩어진 유리조각들. 오빠는 내 손에 유리조각이 있을까 봐 흐르는 물에 손을 씻게 하고 깨진 유리조각을 수습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던 꼬마가 수습을 해봐야 얼마나 재빨리 할 수 있었을까. 유리조각을 치우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고, 그동안 나는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줄기에 계속 손을 대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된 고로 오빠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앉은 채로 슬슬 졸려오기 시작했다. 졸음을 깨운 건 옆집 아주머니의 놀란 목소리였다.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주머니는 서둘러 내 손을 수건으로 닦아 꽉 쥔 채로 황급히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리고는 기억이 잘 없다. 저녁에 돌아온 엄마가 아마 오빠를 엄청 야단쳤을 것이다. 얼굴이 잘 빨개졌던 오빠는 빨개진 얼굴로 엄마를 무서워하고 나에게 미안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의 기억은 있다. 그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주머니는 상황을 회상하며 어머니에게 다시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글쎄, 큰소리가 나고는 조용하길래 집에 와봤지. 그랬더니 얘가 쪼그려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 자세히 보니까 피를 계속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있었지 뭐야. 큰애는 정신없이 빗자루질을 하고."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새끼손가락에 감겨진 붕대를 살짝 뜯어보았다. 상처가 아물며 길쭉이 생긴 살덩어리가 마치 작은 애벌레 같았다. 혀를 끌끌 차던 엄마는 작은 애벌레 위에 하얀 소독약 가루를 뿌려주었다. 그 모양이 수제비 반죽 같아 슬며시 웃었다. 웃는 나를 보고도 엄마는 웃지 않았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가자 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주름들이 생겼다. 덕분에 상처는 더욱 그럴듯한 애벌레 모양을 갖추었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흉터여서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릴 때는 오히려 그 작은 애벌레를 귀여워하거나, 나의 거친 품성을 과시하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허나 그 뒤로 새끼손가락은 더는 자라나지 않았다. 서른 해를 더 산 나의 몸에서 새끼손가락만은 여전히 여섯 살인 것이다.


가끔 이 새끼손가락의 흉터를 들여다보거나 쓰다듬어본다. 작은 애벌레의 모양이 흐릿해져서 지금은 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 애벌레를 본다. 애벌레는 여전히 작고 귀엽지만, 나에게 그것은 내 안의 거대한 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지금의 마음을 바라보게 한다. 지금은 괜찮은지, 혹시 화가 나 있진 않은지, 그렇다면 그 화를 잘 컨트롤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애벌레를 보며, 일이 생각처럼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아 갑갑하고 짜증이 가득했던 요 며칠을 함께 바라본다. 내가 낸 화가 새끼손가락을 유아기에 머무르게 했음을, 자라지 못하게 했음을 떠올린다. 지금 나를 자라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답해본다.


오늘은 매일 먹던 따끔한 탄산수 대신 하얀 거품이 실린 밀크티를 주문했다. 내게든 타인에게든 누구에게든, 따끔하게 구는 대신 그저 '괜찮다'는 따끈한 말을 건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따끈한 밀크티를 꿀꺽꿀꺽 삼키니 하얀 우유거품이 소독약 가루처럼 마음에 내린다. 진정이 된다. 아무래도 따끔한 것보단 따끈한 것이 더 필요한 때인가보다. 뾰족거리는 대신 단단하게, 힘을 내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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