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니, 나만의 공간
우리 집에는 내 방이 있다. 결혼 직후 신혼집에서 나는 남편 앞에 당당히 소리 높여 선언했다. "나만의 방이 필요해!" 남편이 소리 높여 대꾸했다. "그래 그래! 얼마든지!" 그와 나는 방을 하나씩 사이좋게 나누어 차지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금,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가 커가면 커갈수록 위기감을 느낀다. 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거 아닐까? 아직 내 것, 이라는 개념은 없을지라도, 그래도... sns에 보면 다른 집 아이들은 생후 100일도 안되었는데 벌써부터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다. 노르딕 감성, 미국 남부식 감성, 일본식 감성 등등 방 스타일도 가지각색(거개 엄마 취향 200프로)이다. 나는 자연스레 남편이 아닌 내 방을 아이 방으로 내어줄 생각을 품는다. 내가 내 방을 가질 자격이 남편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로(구조, 배치, 위치상의 이점, 동선, 사이즈 등등).
그럼에도 망설여진다. 내 방은 그냥 방이 아니다. 이곳은 내 작업과 취미와 취향과 휴식의 집결지. 아름답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자, 공들여 가꿔온 곳이다. 가구부터 조명, 소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런 곳을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지우고 천연덕스레 놀이방으로 만든다고? 과연 내가 내 손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애정이 짙은 눈빛으로 내 책상을 바라본다. 내 책장을, 내 옷장을, 내 (예쁜 쓰레기들)을... 그리고 그 안에서 충전 중인 나 자신을.
그러다 문득, 어떤 날들을 떠올렸다. 내가 내 방에 있어도 불안하고 침울했던 날들. 무력하고 두렵고, 짜증나고 화나고, 슬프고 공허했던 날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음에도 그 누구보다 외로웠던 날들. 그런 날들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그저 여느 장소와 다를 바 없었다. 내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기에, 어디에 있어도 그곳은 낯선 소용돌이 속이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푹신한 의자 위에 누워 있어도, 뼛속까지 추운 마음으로는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 공간은 사실, 내 마음의 평화가 선행하지 않는 한, 그저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만 좋으면 내 방 따위 그까짓거 쉽게 포기할 수 있어' 같은 대범한(?) 단계로까지 생각이 확장된 것은 아니고, 다만 '방이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우선 내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 정도의 소심한 성찰(!)까지는 얼추 이루게 된 것이 근래의 자그마한 수확이다. 사실 모르겠다. 아이가 자기 관념이 생기고 '나도 내 방 줘'라는 당돌하고 귀여운 발언을 그 조그만 입에 올리기 전까지 어떻게든 최대한 끌고 버티다가, 비로소 마지못해 지는 척 '그럼... (예쁜 쓰레기를 놓을)방구석 쪼오기 한 켠만 엄마 빌려줄 수 있어?'하고 요즘 말로 '짜치는' 협상(?)을 시전해보련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