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by 소란화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네, 소란화 님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는 OO신문인데요. 이번 2026 신춘문예......" "A님!" "네?" "A님 어머님 되시죠?" 정신이 퍼뜩 돌아온다. 하얀 병원 천장과 벽, 그리고 문에 붙은 소아응급실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A아가 처방 나가요. 오셔서 잘 들어주세요." 천만다행으로 A, 우리 아기는 단순 수족구 진단만 받은 채 귀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저마다 대기의자에 앉거나 근처에 엉거주춤 서서, 울고 보채는 아이를 분주히 어르는 부모들 곁을 무심한 듯 지나친다. 하지만 사실 아프다. 남의 아이 앓는 소리도 우리 아이 것 만큼이나 괴롭다. 성탄 전야. 어쩐지 그래서 더 속상하다. 새벽에 여기 온 친구들은 울 수 밖에 없어요, 산타 할아버지. 그러니 운다고 선물 빼먹지 마세요. 선물 두 개 주세요.


신춘문예 결과는 성탄절 전까지 통보가 된다고 한다. 사실 12월 중순이면 다 끝난다고. 그래서 마음을 아예 접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람 마음이 그렇게 무 자르듯 되어지지가 않았다. 누가 보면 상 맡겨놓은 줄 알겠다고, 자조해 보기도 했다. 열심히, 성을 다해,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쓴 것 만으로 될 것 같으면 신춘문예 등단석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성실한 문인들이 진작에 문전성시를 이루었을테다. 그러나 서늘하고 공허한 마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성탄 전야, 수족구가 의심되는 아기를 안은 채 응급실 대기의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하염없이 '신춘문예 등단 망상'을 재생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내가 놀랐다. 등단이 무슨 명품가방이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침을 흘리는 내 모습에, 열에 들떠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 이마에 턱을 괴고 가만히 망상에 잠긴 내 모습에 내가 놀랐다.


크리스마스는 끝났다. 아픈 아이에게는 선물이 있지만, 아픈 어른에게는 선물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아픈 아이인 척 어리광을 부리며 산타에게 어서어서 선물을 내어놓으라고, 맡겨둔 상을 달라고, 등단 시켜달라고 떼를 부리는 나. 이렇게 절박해서는, 그러니까 글이 아니라 글이 가져다 줄 영광에 절박해서는, 그 영광을 받을 깜냥은 못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현실이 내 가슴께에서 구슬프게 칭얼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내게도 산타의 선물은 있다. 아픈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 보내게 될 조용한 성탄절 하루. 더도말고 덜도말고 지금의 내게 자연스레 주어진 오늘 하루. 나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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