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만나지 않는 지인이 있다. 그는 항상 이모님 얘기를 했다. 이모님을 모셨는데 솜씨가 좋으시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좀 불만이다, 저런 부분은 사실 많이 불만이다, 등등 그에게는 이모님에 대해 하고픈 말이 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듣다가, 잘은 모르지만(안 모셔봐서) 맞장구도 좀 치다가, 나중 가서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모님을 모시고 사는 삶은 그에게 디폴트였고, 내게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다 아예 서로의 행방이 묘연한 관계가 되었다. 다만 그가 내게 해주었던 말은 종종 생각이 나곤 한다: 이모님도 안계시고 혼자 내내 아기를 돌보다니 정말 대단해요!
지금은 '만나지 않는 지인' 정도도 아니라 아예 서로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이가 있다. 하루는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부모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잠깐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공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그가 자신의 부모님은 형제들 학비를 대느라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을 갈 수 없었다는 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대학생활 이야기를 전래동화 듣듯 편안히 듣고 자란 내게 대졸 부모란 디폴트였고, 그에겐 아니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이들을 많이 마주쳤지만 그만큼이나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건 민감한 게 아니라 그냥 디폴트의 문제였다. 내가 '이모님'에 '민감'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 디폴트. 그러나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디폴트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