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화 Jan 29. 2023

어린 죄인

(길어요, 좀 많이..)

친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익숙했다. 00장로교회, **감리교회 등 이사를 갈때마다 다양하게 옮겨 다녔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싫었던) 기억이 생생한 교회가 한 군데 있다.


서울 복판에 자리한 그 교회에는 언제나 밥냄새가 물씬 흘렀다. 신도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거대한 식당에서 아침 점심을 모두 해결했다. 얼마나 안 씻은 건지 얼굴이 새까만 사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 눈동자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사람, 혼잣말을 연신 속닥거리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식당 크기가 본당보다 커야만 했을 거다. 좌우간 나는 그 교회의 밥냄새가 싫었다. 오래 사용해 누렇게 바랜 식기는 더럽게 느껴졌다. 무식하게 큰 숟가락과 젓가락은 내 작은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갔다. 성탄이 아니면 고기 반찬은 딱히 기대할 수 없었고, 나물 몇 가지, 국, 김치가 그날 그날의 메뉴였다. 어릴 적부터 된장이며 비지며 가리지 않는다고 '신토불이' 소리를 듣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교회밥만큼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콩나물 무침과 무말랭이와 시래기국을 한데 말아 입에 욱여넣고 게걸스레 씹어대는 장면만 보면, 절로 식욕이 달아났던 거다.


내가 그 교회에서 싫어했던 건 밥냄새 뿐이 아니었다. 다섯 살인 나는 한사코 본당 예배를 고집하며 떼를 썼다. 고작 어리다는 이유로 어린이 예배실에만 있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회 다락에 위치해 있던 어린이 예배실은 두 귀가 쫑긋 설만큼 춥고 습했다. 본당도 춥긴 매한가지였지만, 적어도 보송보송했고 쿰쿰한 곰팡이 냄새도 없었다. 코찔찔이에다, 맹한 얼굴로 눈꼽이나 달고 앉아있는 '아가'들과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니, 진저리났다. 그런 콧대높은 나와 친구가 되고픈 아이가 한 명도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어린이 예배실이라기보다 차라리 춥고 습한 다락방같은 그곳에서, 나는 때때로 '소공녀'라도 된 것만 같았다.


정작 내가 정말 싫어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아무개 언니'와의 만남이었다. 입냄새도 입냄새였지만 그녀의 몸에선 미스테리한 향이 흠씬 풍겼다. 할머니 방에서 나는 오래된 약 냄새. 쓰고, 시큼하고, 떨떠름한 냄새였다. 그녀를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종종 의문이었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 때문이었다(다섯 살에겐, 머리 길이가 성별을 나누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감안하자). 그녀는 나를 발견했다 하면 혀짧은 소리로 '소란화!' 외치며 달려오곤 했다. 작고 뚱뚱한 그녀가 펭귄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우스워 주변에서 웃음이 터지곤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나를 한아름에 안아들고는 '둥기둥기' 하면서 교회 이곳 저곳을 잘도 돌아다녔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나와 언니를 행여 '한 세트'로 볼까봐 노심초사하곤 했다. 어른들은 종종 그녀를 '다운이'라고 불렀다. 다섯 살의 나는 그게 '다운증후군'의 줄임말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단 하나,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싫었던 것 딱 하나를 꼽자면, 그건 바로 '죄인입니다'라는 말이었다. 본당 예배 '큰목사님'도, 어린이 예배당 '작은목사님'도, 설교 전에는 언제나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를 약속한 듯 합창하곤 했다. 죄,인. 다섯 살짜리가 이해하기엔 다소 벅찬 단어였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뭘 잘못했지? 나는 말도 잘 듣고, 예쁘고, 정리 잘 하고, 밥 잘 먹고, 유치원에서는 늘 사이좋게 지내는데, 어디가 나쁘다는 거지? 다섯 살 때 품은 이 강렬한 '반감'은, 제법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좀처럼 뽑혀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도 진저리치던 교회였건만, 머리가 큰 후 이따금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낄 때면 마치 귀소본능을 쫓듯 몇 차례 교회 문간을 기웃거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마디, '우리는 죄인입니다' 때문에 문앞에서 되돌아오기만 여러 차례였다.


싫은 게 어쩜 그리도 많았을까. 다섯 살이라는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혹여 지금 이 순간, 거리를 지나가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순수 그 자체'라는 인상 밖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 자신만 돌이켜 보더라도, 어린아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고 납작한 존재가 아니다. 분명 다섯 살의 소란화는 고도로 복잡한 내면 세계의 소유자였다. 다만 아직 어리고 배운 말도 적어, 보고 느낀 것들을 세련되고 풍성한 언어로 표현할 줄 모를 뿐.  


그렇기에, 당시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럽고 습하고 춥다고, 한마디로 전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불평불만에 휩싸이거나, 나를 향해 달려오던 '아무개 언니'를 무작정 혐오하는 감정을 남몰래 품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곧 나의 '죄'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죄인임을 순순히 인정하기 싫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일단 그렇게 인정해버리면, 더 이상 '교회밥'과 '예배당'과 '아무개 언니' 따위를 이전처럼 마음껏 싫어할 수만은 없게 되니까. 


지금의 나는 '죄'라는 말에 더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죄sin, 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탐욕과 부정, 시기와 거짓말 따위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이것들은 모두 일차적인 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죄, 그러니까 '원죄original sin'는 사랑으로부터 멀어져버린, '비뚤어진 지성'에서 시작된다. 더럽고 못나고 가난하고 멍청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이 세상은 각자도생이라는 '착각'. 세계와 나는 동떨어져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남들이 나를 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제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단한 착각'. 이런 것들이 바로 원죄이다. 오랜 시간 나는 수많은 '착각'에 휩싸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나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원망하고 탓하는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는 사랑의 반댓말이 무관심이라 했지만, 나는 그것을 '공포'라 부르고 싶다. 죄인이란 다름 아닌 '사랑을 믿지 못하는 자',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 곧 '공포에 떠는 자'이다. 죄는 공포에 질린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기능장애인 셈이다(영성전문가 에크하르트 톨레가 그의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섯 살배기 어린이도 얼마든지 '죄인'일 수 있다. 단 5년을 살았더라도, 주변의 공포와 두려움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면, 죄인이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천사같은 얼굴로 세상을 향해 웃고 있지만, 정작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 불쌍한 '어린 죄인'. 내가 그랬다. 다섯 살 소란화는 슬픔과 분노가 많은 부모님 곁에서 그들의 공포를 있는 대로 빨아들이며 자라나는 중이었다.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언제나 노력해야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더럽고 이상하고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존재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남도 그래야만 했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죄만 남은 세상. 그것이 어린 내게 익숙하고도 편안한 세계였다. 


내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아는 어린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서울 한복판에서 연중무휴 진한 밥냄새를 풍기던 교회를 그처럼 싫어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식판에 자기가 먹던 시금치를 연신 올려주며 빙긋 웃던 아저씨에게 나 또한 빙긋 웃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린이 예배실에서 또래 하나쯤은 사귀어볼 마음이 들었을 거다. 예배가 끝나고 찬송이 울려퍼질 때, 교회 전체를 감싸는 웅장한 오르간 소리에 종종 정신을 빼앗기곤 했을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개 언니에게 '둥기둥기 한 번 더!'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성경에서는 더 늦기 전에 주 예수를 믿고 '회개하라'고 외친다. 이걸 조금 다른 말로 번역해보려 한다. 회개, 회심은 죄를 뉘우치고 벌을 받는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일종의 스스로를 향한 '긍정맹세'이다. 그래서? 어린 죄인이었던 나는 드디어 회개를 했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교회는 다니지 않는다(aka 야매 기독교).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타인과도 함께 누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 뻐기어보는데, 위에 계신 분(?)도 동의해주실지는 미지수다.      




   

작가의 이전글 혼밥은 건강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