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이면 조금 다른 뜻이 된답니다 놀랍죠)
남들처럼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퇴근을 반복하며, '평범'이라는 척도에서는 단연 '최상위'의 만족을 누리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내게는 남모를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바쁜 척'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집 공고문만 보면 할 일이 제법 많은 자리 같았다. 싫은 일도 아니고, 사회에 나가면 꼭 해보고픈 일이었기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는 호기로움으로 단번에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웬걸, 별일 없었다. 그러니까, 별 할 '일'이 없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싶어 복도를 돌아다니며 곁눈질로 훑기도 하고, 괜히 말을 붙여 업무에 대해 다짜고짜 물어보기도 했다. 아니었다. 다들 바쁘다고 했다. 해도 해도 너무 바쁘다고. 그래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의기소침해졌다. 일한 지 반년이 넘었을 때에야 사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일, 원래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단다. 그런데 회사 '윗분'들이 구태여 풀타임 고용을 주장했다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눈만 껌벅거렸다. 달리 뭐라 되묻겠는가. 그 시점에서 이미 '바쁜 척' 하는데 도가 터버린 나였다.
일이 없는데 일이 있는 척, 그것도 꽤 많은 척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비유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영락없는 고양이다. 코 옆에 수염도 길쭉하니 달려있고, 귀도 뾰족하고, 얼굴도 새초롬하고, 툭하면 세수를 하고 싶고(?), 웬만하면 높은 곳이 좋다. 그런데 이제부터 강아지인 척 해야 한다. 그것도 앞뒤좌우로 강아지들만 있는 공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해 완벽한 강아지를 연기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든 강아지처럼 짖고, 뒹굴고, 뛰어다니려 하지만, 잘 될 리 없다. 결국엔 모두가 당신이 고양이임을 알게 될 거란 두려움에 휩싸인 당신은 그만 패닉에 빠져 식빵모드(!)에 들어간다. 한마디로, 얌전히 쭈그려앉아 주위를 경계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소리다.
내가 일한 회사는 직급과 직책에 따른 공간 구별이 뚜렷했다. '장'들은 가장 안쪽에, '원'들은 들어온 순서나 부서 내에서의 중요도에 따라 차례대로 촘촘히 붙어 앉았다. 내 자리는 사무실 입구 바로 앞, 그러니까 가장 끝에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기는 매우 유리(?)했다. 그와 동시에, 무얼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나 너무도 잘 보였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은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꼭 한번씩은 내 자리를 흘끔거렸다. 이건 절대, 그들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본디 우리 인간의 안구란, 주변을 약간씩이라도 살펴 위험을 미리 예방하려는 일종의 반사작용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동물적인 본능 때문에 누군가 어쩔 수 없이 내 컴퓨터로 시선이 향했을 때, 행여 '***톡' 메신저창이라던지 '***북' 피드라던지 '***레스트'의 온갖 화려한 사진들 따위가 펼쳐져 있는 걸 우연찮게라도 목도하게 된다면, 곤란한 기분은 온전히 내 몫이지 그분(?)의 안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가끔가다 정말 바쁜 날도 있었다. 그럴 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도 몰랐고, 일이 끝나고 새벽별 비슷한 것을 보며 퇴근할 때 '이 회사의 어떤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러고 살겠구나' 하며 우습지도 않게 남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런 수준의 바쁨이란 또 그것대로 일종의 '광기'에 휩싸인 정신 상태를 하루 내내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버티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바쁨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같은 수준의 바쁨을 가장하며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잔뜩 기죽고 숨죽인 초라한 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사람 때문에 끝까지 버텼다. 동료들은 내게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알아서 눈감아주는 센스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쁜 척 하는 내 연기에 곧잘 장단을 맞춰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인간적인 따뜻함만으론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나는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여유롭고, 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시간들이 의미가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쉬움(과 월급과 사원증과 근처 맛집 등등)을 뒤로 하고 두번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일 없던' 경험은 지금껏 나만의 비밀이었는데, 이미 만천하에,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라는 사람이 'Bullshit Jobs(엉터리같은 일[적당히 순화한 번역입니다... 힛])'란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지금 당장 사라져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으며 전혀 바쁘지 않지만 오로지 고용주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바빠보여야만 하는, 한마디로 "뭣"같은 일'을 [불쉿 잡]이라고 명명한다. 그레이버의 주장은 명쾌하게 단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불쉿 잡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건 불쉿같은 사회 시스템과 경제 체제 때문이다. 불쉿 잡은 개인의 삶을 서서히 좀먹어 들어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그건 경이로운 일이다. 그래도 좌우지간 지식인이라면 불쉿 잡에 대해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책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가 느낀 건 무엇보다 안도감이었다. 다소 전형적인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던 거다.
지금은 불안정하긴 해도 매일 주어진 일이 있고, 그래서 '일 없습니다'라는 제목은 더 이상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없습니다', 라고 붙이면 북한말로 '괜찮다'는 뜻이 되는데, 이건 또 제법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는 일은 있지만 일없는, 대략 그런 상태다. 내 짧은 소견으로, 나쁘진 않은, 오히려 썩 괜찮은 상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불쉿 잡'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일,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매일 매일 괜찮은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하지만 벌어먹고 산다는 건 농담이 아니기에, 오늘도 그저 '좋을텐데'로 끝나는 글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