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팬심주의)
나는 독서 범주가 다양한 편이 아니다. 한국소설로 말하자면 1920-30년대 작품들보다도 근래 작품들 근황을 더 모를만큼 깜깜한 수준이다. 이상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 사람들이 꼭 읽어보라는 둥 올해의 소설이라는 둥 하는 신작들은 몰래 묵혀둔다. 그러다 몇 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비로소 혼자 열광하는, 그런 희한한 타입이다(드라마나 영화도 예외는 없다). 그런 갑갑한 내가 아이돌만큼이나 추종하는 작가가 단 한 사람 있다. 바로 김애란이다.
그녀는, 뭐랄까, 한국말로 글을 쓰는데, 그녀가 쓴 글은, 뭐랄까, 한국말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글에 대한 나의 인상을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나 말 잘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김애란 작품을 전공한 문학평론가 정도라면 모를까, 그녀의 글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무척 어렵다.
<달려라, 아비>는 내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사'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다가온, 김애란의 대표작이다. 작가가 <달려라, 아비>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내게는 그 어떤 작품집도 <달려라, 아비>만 못하다. 이건 마치, 지금의 연인과 함께한 시간들을 돌이켜볼 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다름 아닌 그와의 첫만남인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치다. 십여년 전, 냉기가 솔솔 들어오는 창가 쪽 테이블에 쪼그리고 앉아 굳어버린 김밥을 씹으며 <달려라, 아비>의 첫 장을 읽던 순간, 나는 조금 슬펐었다. 그건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져서가 아니라(상당히 처량했다고들 한다), 이 세상엔 똑같은 한국어를 가지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막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닳고 닳은 낯익은 단어들로부터 전혀 색다른 심상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도 그런 힘을 낼 수 있을까. 한국어를 외국어처럼, 외국어는 한국어처럼, 언어의 한계를 깨고, 의식과 무의식이 2차원의 종이 위를 넘나들며 3차원의 현실 속에 하나의 '어엿한' 세계를 창조하도록 할 수 있을까.
김애란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장면을 제일 웃긴 장면으로, 제일 잔인한 감정을 제일 아름다운 감정으로, 제일 피하고 싶은 진실을 제일 맞서고 싶은 현실로 바꿔버리는 한국어의 마법사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가 은희경일수도, 한강일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정유정일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김훈일수도 있다. 그래서 결론은 어쨌든 김애란이 짱이다.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달려라, 아비>를 추천한다. 그걸 읽고도 모르겠다면, <비행운>도 추천한다. 또 그것도 성치 않다면, <바깥은 여름>을 추천한다. 두 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