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평범한 하루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가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가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다. 일반인들의 일상 브이로그가 잘 나가니 연예인들도 점차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 그들의 '베일에 싸여있던' 매일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TV 프로는 이미 일상 브이로그의 점령이다. 여기저기서 스타들의 집, 내밀한 공간과 그곳에서의 행동이 여과없이 전시된다. 물론 사전에 '협의'하고 '계획'한 만큼만 공개되는 것이겠지만, 옛날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요즘의 신풍속이다. 타인이 먹고, 마시고, 집안일하고, 잠자는 모습이 왜 이토록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걸까?
누군가는 이를 대리만족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과장 조금 보태어서 이를 관음증적 욕구충족이라고까지 한다. 나는 모두 다 맞는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타인의 일상을 통해 나의 일상을 돌아보고픈 제법 진지한 마음에서 그런게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의 하루는 눈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간. 분단위로 움직이는 스케줄. 하늘 한번 올려다볼 기회조차 없는 주중의 나날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숟가락과 커피 리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출퇴근길, 답답한 도로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졸음과 허기. 그런 분투 속에서 내 삶이 어디론가는 가고 있는데 당췌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 하루 하루가 반복되다보면 일상이라는건, 어쩌면 살고는 있는데 실체를 느껴볼새도 없이 시간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유령같이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유령같은 나의 일상을,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역으로 추적해가고 음미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바로 지금의 일상 브이로그 열풍이 아닐까 한다.
나는 [나혼자산다] 류의 브이로그보다는 좀더 '소박'한 느낌의 브이로그가 좋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보다는 한 가정을 돌보는 사람의 브이로그를 좋아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너무 심플하고 행복해보여서 (질투가 난다) 못 보겠고(!) 한편 여럿이 같이 사는 집의 브이로그는 마치 나를, 내 가족을 보고 있는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된다. 일상에서 쉴틈없이 반복되는 돌봄노동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평화로워진다. 나 역시 누군가가 보면 저런 자세로 창문을 닦고 저런 포즈로 계란물을 휘젓고 있겠구나 싶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의 특별할 것 전혀 없는 어느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어쩐지 바짝 허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고쳐잡게 되는 것이다. 훗날 기억 속의 나와 나의 일상을 돌아보며 즐거움에 잠길 미래의 시청자, 또 다른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