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박제'해 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 원하던 대학이나 직장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프러포즈 받았을 때, 식장에서 부케 던질 때(?), 유튜브에서나 보던 바로 그 여행지에 도착해, '헉' 소리 나는 풍경을 마주했을 때. 내게도 '박제 각'으로 다가온 순간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어떤 장면' 하나는, 글쎄, 박제를 넘어 내 영혼 속에 영원히 봉인해두고 싶을 만큼 소중하게 남아 있다.
눈이 진창이 되어 길이 온통 지저분해진 어느 밤이었다. 곧 자정에 가까워서인지 유달리 컴컴했다. 험한 길을 뚫고 나를 데려다준 그 애가, 왜인지 선뜻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별안간 불러 세웠다. 왜 그러냐고 대꾸할 새도 없이, 그 애는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힘주어 안았다. '응?' 평소 말수도 적고 숫기도 없는 그의 돌발행동에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괜히 몸을 꼬았다. "왜 그래?"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던 그가 마침내 팔을 풀면서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늘 여기 있어."
안다. 이 드라마적인 대사. 오글거림. 혹시 지어낸 것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나도 내 귀를 의심했으니까. 포옹 후 그가 하는 말을 들었을 당시, 그 진창같은 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의심' 뿐이었다. '얘 뭐야 지금?' 뜻밖에도 당시의 경험이 진가를 발휘한 건, 시간이 흘러 그 애와 결별을 맞은 후였다.
우리는 그렇고 그런 이유로 인해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헤어지기로 한 다음날부터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그런데 신기했다. 이따금 일상의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 애의 갑작스런 포옹과 '나는 늘 여기 있어'라는 음성이 한 세트처럼 떠올랐다. 그건 그리움이나 아쉬움, 미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정을 불러왔다. 마치 일종의 엄중한 선언(manifesto) 같았다. 예전의 연인, 아니, 사랑이 내 일생에 영원토록 남긴 하나의 거대한 '비석' 처럼 느껴졌다. 내가 다시 누구와 만나든, 만나지 않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든, 홀로 살다 죽게 되든, 그 때 그 시절의 사랑은 영원히 '거기 있을' 거라는, 어떤 절대적인 명령문: 나는 늘 여기 있어.
왜 그때 갑자기 나를 안고 그런 말을 했는지, 헤어지는 그 날까지도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묻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유를 알았다면 그 날의 장면은 내게 이토록 진한 여운을 남기진 못했을 거니까. 내 기억이니까,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다, 랄까. 로맨틱함이라고는 조금도 몰랐던 당시 나와 내 연인의 순진무구한 마음이 소중히 '박제'된 그 날의 기억을, 나는 애지중지 보관중이다.
어떤 장면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서 하나의 선언이 되어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는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 하나의 선언을 통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