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 살보다 어린 나의 인생

철없는 82년생 지영이

by 꽃비


나는 88 올림픽 굴렁쇠 소년을 보았으며

전화가 걸린다는 뜻의 걸리버 폰도 써봤다.


그리고 그 유명한 빨간 옷을 입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월드컵 응원도 해본 82년생 지영이다.


사복에서 교복으로 바뀌는 끼인 시대를 살아왔던 나는

주 6일 학교를 가면서도 양푼을 들고 와 친구들과 밥 비벼 먹는 재미로

힘든 고3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는데

짜인 대로 치열하게 공부도 하고(치열했지만 잘하진 못했던...)

피 터지는 직장생활도 견뎌왔지만 82년생 지영이가 그랬듯

나 또한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육아를 하며 40대를 보내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빠 밑에서 태어난 덕분에

내 인생 최고의 일탈이 H.O.T. 콘서트를 가기 위해

은행 앞에서 밤새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시시한 인생을 살 줄 알았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신나게 즐겨볼걸 그랬다


어찌 보면 굴곡 없는 인생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아직도 순정 만화책을 보며

내가 만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남모르게 혼자 상상을 펼치고 있고

드라마 속 선재를 보며 뭉클해하는

철딱서니 없는 어른이에 불과하다


반백살보다는 어린 나의 철없는 인생

스펙터클한 맛은 없겠지만

남의 상상을 훔쳐보는 재미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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