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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하는 날

by 황현경

앞머리가 눈 아래까지 자라서 불편했다. 뒤로 넘겨도 앞으로 내려오고 머리를 묶으면 삐져나오곤 했다. 세수하기 위해 세면대에 서 있다가 앞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어졌다. 먼저 빗에 물을 적셔 잘 빗어 내리고 눈썹을 중심으로 약간 아래쪽을 잘랐다. 집에 있던 가위를 이용했는데 생각처럼 잘리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가위질했는데 가위 한쪽이 톱니 모양이라서 자꾸 찝혔다. 여러 번의 가위질을 하고 거울을 보니 생각보다 위로 올라가 잘려 있었다. 망했다. 앞머리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삐죽빼죽 고르지 못한 앞머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미용실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처음 잘랐을 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아버지가 의자에 앉혀놓고 긴 머리카락을 잘라 주셨다. 오랫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허리까지 길었었다. 아버지는 목에 보자기를 둘러서 묶어주고 일본에서 사 온 가위로 잘라 주셨다. 사각사각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엉덩이가 간지러웠다. 오른쪽 머리카락을 자르면 오른쪽 엉덩이가 왼쪽 머리카락을 자르면 왼쪽 엉덩이가 간지러웠다. 그래서 몸을 비틀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다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보다 간지러움 참는 게 더 힘들었다. 다 자르고 나니 머리가 횅하니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면도크림을 뒤통수에 바르고 면도날로 삭삭 면도까지 해주셨다. 수북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보니 머리가 더 휑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횅한 머리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의 기억보다 길었던 머리를 잘라서 머리가 가벼워지고 허전한 느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친김에 동네 미장원에 가기로 했다. 내가 가기 싫어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내 머리카락은 파마가 잘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서 그렇다고 한다. 1980년대 파마하기 위해 미용실에 가면 하루 종일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알맞게 커트하고 롤을 말고 롤 위에 약을 뿌리고 두 시간 이상 방치한다. 지금은 뜨거운 열이 나는 모자를 씌워 빠르게 약이 스며들게 하거나 회전하면서 열을 방출하는 기계 앞에 앉아 있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자연적으로 약이 스며들도록 시간을 들여야 했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파마해도 금방 풀어져 버려서 미장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머리에 공을 들이는 시간과 정성이 의미 없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머리카락에 변화를 주고 싶어 파마하곤 했었다.


동네 미장원은 수더분한 원장님이 혼자 영업하는 미용실이다. 작은 화분들이 나란히 모여 있었다. 이름 모를 작고 예쁜 꽃이 피어있는 곳을 지나 미용실로 들어갔다.

“파마 좀 하려고요.”

내 머리카락을 보더니 파마가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시며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머리카락을 사각사각 잘랐다, 그리고 롤을 지그재그로 꼼꼼하게 말아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라 그런지 안과에서 검사받느라 시달려서 그런지 잠이 쏟아졌다. 머리를 말고 잠시 뜨거운 열판이 돌아가는 동안 잠깐 졸았다.

“언니 토마토 좀 먹어. 만 원어치 샀는데 많아서 여기 좀 놓고 갈게.”

누군가 들어와서 토마토를 꺼내놓고 총총히 떠나간다. 원장님은 빨갛고 탱글탱글한 토마토를 금세 씻어서 먹으라고 티슈와 함께 가져다주신다. 파마하다가 얼떨결에 토마토를 먹었다. 껍질이 얇고 맛있었다. 먹고 나니 커피믹스도 한 잔 타 주신다. 잠시 후에 서리태콩 볶은 것을 한 봉지 주신다. 손님이 오면서 빈대떡이나 과일 같이 먹을 것을 갖다 주면 손님들하고 나눠 먹는다고 한다.


인심 좋은 시골의 작은 동네 같다. 이 동네는 우리 아파트 뒤편에 있는데 우리 동네와 아주 다르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대부분이고 새로 지은 건물은 빌라 몇 개 정도이다. 목욕탕도 외벽부터 오래되어 낡아 보인다. 이름도 장미 목욕탕이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방학동과 쌍문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모습들이 정겨워 보인다. 원장님이 공을 들여 파마를 해줘서인지 머리모양이 탱글탱글 예쁘게 나왔다. 원장님도 나름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뒤통수도 거울로 비춰주면서 머리 관리하는 법을 알려 주셨다. 머리를 다하고 나서 수고하셨다고 서로 박수를 쳐 주었다.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털실로 짠 수세미를 하나 주신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모과와 수세미를 주셨는데 또 갖다 쓰라며 챙겨주신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이 되어 미용실을 나왔다. 상쾌한 기분을 가득 담아 집으로 간다. 오랫동안 이 기분을 조금씩 아껴 써야겠다. 흐뭇한 날을 선물 받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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