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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꽂힌 단어 한 조각

by 황현경

은희경 작가의 산문 <또 못 버린 물건들> (<주> 난다 2023년) 중 “감자 칼에 손을 다치지 않으려면”을 읽었다.

작가는 부엌칼에 손이 베이는 이유는 세 가지라 한다.

1. 좁아서. 2. 급해서. 3. 하기 싫어서.이다.


오래전 채칼에 손가락을 다쳐 몇 바늘 꿰맸던 생각이 났다. 나는 세 번째 이유로 다쳤다. 남편이 시작한 식당 일을 어쩔 수 없이 내가 맡아서 하고 있을 때였다. 출근하기 싫었고 음식 만드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매출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은 다른 곳에 취직해 다니기 시작했고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려니 마음이 버거웠다. 식당일을 해본 것이 아니라 처음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많이 힘들었다. 손님을 대처하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장사하려니 문 열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다.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오면 겁부터 났다. 미리 음식을 준비해 놓고 시작해도 여러 가지 요청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멘털이 나간 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멍해지곤 했었다. 어느 날 손님은 대구탕에 대구가 익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했고, 식사비용을 받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손님이 가고 나서 상을 치우는데, 뚝배기에 남은 대구가 하나도 없었다. 익지 않은 대구를 다 먹은 건 아닐 테고,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공짜고 먹고 싶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바보처럼 죄송하다고 굽신거렸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저녁 장사 준비로 양배추를 채칼로 썰고 있었다. 채를 치면서 저녁 장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딴생각을 했었다. 순간 채칼의 날카로운 칼끝이 살을 후비고 드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지혈하고 소독하고 스스로 치료할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다. 급히 휴지로 손가락을 말아 쥐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 피가 나는 손가락을 소독 약솜으로 닦아내고 상처를 본 의사가 몇 바늘 꿰매야겠다고 했다. 손가락 끝에 통증이 그렇게 심할 줄 몰랐다.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손가락 끝을 꿰매기 위해 마취 주사를 맞았다. 마취 주사가 그렇게 아픈 줄 처음 알았다. 손가락 끝에 있는 신경들이 그리 섬세하고 예민할 줄이야. 하마 트며 나를 잡고 있던 의사 선생님을 후려칠 뻔했다. 마취약이 퍼지고 손가락을 꿰매고 붕대를 감고 치료가 끝난 뒤 병원을 나왔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허탈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녁 장사는 해야 하는 나 자신이 답답해서 울컥한 심정이 되었다.


은희경 작가는 일반 칼로 감자를 손질하다가 손가락을 다쳤고, 손가락을 꿰맨 뒤 한동안 칼질이 꺼려져서 안전한 감자 칼로 감자요리를 주로 해 먹었다고 한다. 손을 다치지 않으려면 안전한 조리도구를 사용한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지혜로운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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