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훈련>
오래전 큰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풍기에 가서 추석을 지내고 온 적이 있다.
대대로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 추석날 손님이 많았다.
큰집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친척분들이 인사하러 오셨다.
부엌에서는 올케언니들이 배추 전, 동그랑땡 같은 전과 떡 그리고 갈비찜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술상을 차리고 다시 설거지하느라 잠시 쉴 틈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거들어 주려고 했지만 먼 데서 온 시누이라고 설거지도 못 하게 말렸다.
밤이 이슥해지고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난 뒤 큰아버지와 어른들은 잠이 들었다.
올케언니들은 뒷설거지를 마치고 한쪽 방에 모였다.
과일과 떡 그리고 전과 나물로 상을 차리고 술을 가져왔다. 술을 마시면서 시누이가 같이 있으니, 아버님이 혼을 내지 않을 거라고 농담했다. 얼결에 주는 술을 받아먹으면 언니들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들었다.
추석이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고,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이 은은하고 몽환적이었다.
시골 동네라 멀리 개 짖는 소리가 가끔 들렸고 귀뚜라미 소리가 귀뚤귀뚤 들려왔다. 명절이지만 부엌에만 붙잡혀서 음식 만들고 술시중 드느라 고단했을 올케언니들은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방문을 열었다.
“아이고 시원하다.”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방문을 여니 사과 과수원이 보였다. 구름 사이 달님이 고개를 내밀자, 과수원이 환해졌다.
달빛 아래 과수원은 밤안개가 내린 듯 아름다웠다. 집 뒤가 모두 과수원이었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맨 앞쪽에는 자두만 한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아기 사과나무라고 했다. 나뭇잎은 보이지 않고 아기 사과만 잔뜩 달려 있어 현실의 나무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기 사과나무는 무척 예뻤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많이 열려 나뭇가지가 휘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바닥에 사과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언니들은 사과를 주워 베어 물었다.
“아버님께 들키기 전에 먹자. 아버님이 보시면 먹지 말라고 불호령 떨어지겠네.”
언니들은 킥킥 웃음을 참으며 사과를 주워서 베어 물고 내 손에도 쥐여 주었다.
“아가씨 먹어봐요. 풍기 사과 맛있기로 유명해요.”
“아버님이 자린고비라 떨어진 사과도 못 먹게 해요.”
누군가가 나에게 이르는 것 같았다. 언니들의 일탈이 즐거워 보였다.
호기심에 나무에 달린 사과를 하나 비틀어 땄다.
“아가씨 사과 따면 안 돼요. 아버님 알면 우리 모두 혼나.”
올케언니가 화들짝 놀라 제지했지만, 나는 술김에 사과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자 파사삭 소리가 났다. 설탕 코팅을 한 것처럼 달고 싱싱했다.
먹으면 안 되는 금단의 사과를 먹는 것 같았다. 사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생전 처음 맛보는 맛있는 사과 맛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달빛을 받아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붉게 빛나는 사과를 달고 맛있게 먹었다.
과수원은 적막했고 달빛 따라 월광 선녀가 내려와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신비한 밤이었다.
밤안개가 고요히 쌓이고 술에 취한 며느리들의 웃음소리가 잔잔히 들렸다. 소리 내어 웃는 것도 눈치 보던 올케언니들의 수줍고 순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처음 가보았던 곳.
처음으로 사과를 따보았던 기억.
경북 영주 풍기에 있는 큰집에서의 하룻밤이 꿈인 듯 아련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