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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18. 2023

음식여행

김치가 맛있어요 김장여행 2부


“김치 사서 먹으면 되지, 왜 힘들게 만들어?”

“김장은 배추가 가장 맛있을 때 수확해서 김치를 많이 만들어 땅속에 저장해 놓는단다. 잘 익은 뒤 꺼내 먹으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가장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가 있어. 우리 민족만의 채소 보관법이야. 그리고 우리 식구들 입맛에 맞게 하므로 사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어. 식구들이 다 같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눠 먹는 나눔의 문화라고 할 수 있지. 우리나라 김장이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 알고 있니?”

“인류 무형문화유산이 뭐야?”

아빠는 무채를 썰면서 신나게 설명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유산 즉 인류의 무형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지. 유네스코라는 국제적인 단체에서 하고 있단다. 우리의 김장 문화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할 만큼 중요한 세계적인 문화라는 뜻이지.” 김장을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화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만의 김장 문화가 자랑스럽고 뿌듯했어요.     


엄마는 어젯밤에 절여놓은 배추와 총각무를 씻어서 커다란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물을 뺍니다. 갓이랑 양파, 대파도 씻어 바구니에 건져 놓습니다. 씻어놓은 재료들을 썰어서 커다란 그릇에 담았습니다. “어머니 김장재료 다 준비되었어요.” “그럼, 총각김치부터 먼저 만들자.”

 커다란 고무 그릇에 씻어 놓은 총각무를 담고 고춧가루, 찹쌀 풀, 새우젓, 대파, 붉은 갓 썬 것, 양파 썬 것, 까나리 액젓을 넣었습니다. 총각김치를 아빠가 버무립니다. 아빠는 힘이 세서 이런 일도 척척 잘하시네요.      


“소금도 좀 더 넣어야지 오래 보관하려면 조금 짭짤해야 해.”

아빠가 총각김치를 버무리다 말고 얘기합니다. 엄마는 너무 짜게 먹는 거 안 좋다고 소금은 조금만 넣으라고 옥신각신합니다.

“옜다 소금” 할머니께서 소금을 한 주먹 휘리릭 뿌립니다. 그 모습이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김장하는 것은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양념을 고루고루 섞고 총각무 절인 것을 넣어 잘 버무립니다. 빨갛고 맛있어 보이는 총각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김치통에 잘 담아서 꼭꼭 누르고 절인 배춧잎을 위에 이불처럼 덮어 줍니다.

“맛있게 잘 익어라.” 할머니는 김치통 뚜껑을 닫으며 주문을 외웠습니다. 정말 맛있게 익을 것 같습니다.     


배추김치를 합니다. 무채 썬 것에 고춧가루를 붓고 빨간 물이 들 때까지 잘 버무립니다. 버무리는 건 또 아빠가 합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버무립니다.

“아이고 힘들다 새롬아 아빠 땀 좀 닦아줘”

나는 얼른 수건을 들고 아빠 얼굴에 송송 흐르는 땀을 닦아 줍니다. 엄마는 옆에서 까나리액젓도 넣고 새우젓도 넣고 설탕, 찹쌀 풀, 매실청, 마늘, 생강 빻은 것도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배춧속을 다 버무린 아빠는 할아버지와 뒷마당에 나가 구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아빠 뭐 해?”

“김치 담을 김칫독을 묻으려고 땅 파고 있지”

“힘들게 만든 김치를 왜 땅에 묻어?”

“김치를 땅속에 묻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익는단다. 익으면서 몸에 좋은 유산균이 많이 생기거든 그러면 김치가 더 아삭아삭하고 새콤하니 맛있어진단다. 김치에 들어있는 김치 유산균을 많이 먹으면 항산화, 항노화 효과를 볼 수 있어. 김치를 땅속에 묻어서 잘 익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 김치냉장고야. 우린 아파트라 김장독을 묻을 수 없지만 여긴 시골이라 마당이 있어서 땅을 파고 김치를 묻어 놓으려고.”     


방 안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버무려놓은 김칫소를 배추에 넣고 계십니다.

“얘들아 여기 절인 배추 좀 갖다 줄래?” 동생과 함께 작은 양푼에 절인 배추를 담아서 엄마가 배춧속 무치는 곳으로 가져다 드렸어요. 김치통도 엄마와 할머니 손 닿는 곳으로 가져다 놓았어요. 김치 만든 것을 담으려고요, 김칫소 버무리는 것을 구경했어요. 할머니는 노란 배추 한 장을 뜯어서 빨간 김칫소를 넣고 쌈을 쌉니다.

“누가 먹을래?”

“할머니 나요, 나 먹을래요” 동생이 입을 아 벌리고 배추쌈을 얼른 받아먹습니다.      


“안 매워?” 나는 매울 것 같아 주저주저하면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동생은 맵다면서 또 하나 받아먹습니다.

“음 맵지만 맛있어 할머니 진짜 맛있어요. 돼지고기랑 먹으면 꿀맛이겠다 헤헤”

“돼지고기 삶고 있으니까 김장 끝나면 먹자”

“앗싸” 동생은 신이 나서 팔을 휘두릅니다. 찹쌀 풀도 넣어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김칫소는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나도 한번 먹어 볼까? 집에서 김치를 먹어 보긴 했지만, 김장하면서 먹어 본 적은 없어서 그 맛이 궁금합니다.      


김치는 뒷마당에 묻어 놓은 장독에 비닐을 깔고 흙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조심 한 포기씩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독을 가득 채우고 비닐로 꽁꽁 묶은 뒤 장독 뚜껑을 덮고 기다란 막대를 텐트 칠 때처럼 세모 모양으로 세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볏짚으로 지붕처럼 만들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작은 초소가 생긴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김장이 끝났습니다. 엄마는 김칫소를 한 그릇 담아서 밥상 가운데 놓고 절인 배추와 새우젓도 담아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뜨끈뜨끈한 돼지고기를 냄비에서 꺼내 숭덩숭덩 잘라서 상위에 수북수북 담아놓습니다.

“와 맛있겠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동생은 군침을 흘리며 상으로 달려듭니다.

배추도 나르고 엄마 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배가 아주 고팠습니다. 삶은 돼지고기 냄새를 맡으니 배속에서 꼬르륵꼬르륵 밥 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얼른 오셔서 식사하세요.”

"배고파요 빨리 저녁 먹고 싶어요. "

"새롬이가 웬일이니 배고프다 소리를 다 하고, 시골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오늘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엄마가 활짝 웃으며 한마디 하십니다.     

배추 뽑는 것부터 김치를 묻는 것까지 모두 힘들었지만 겨울 양식을 장만해 놨으니 반찬 걱정 없다며 다들 좋아하십니다.


“다들 김장하느라 고생했다 어서 저녁 먹자”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수저를 듭니다.

“언니 배춧잎에 새우젓이랑 김칫소랑 돼지고기 넣어서 먹어봐 진짜 아주 맛있어”

돼지고기 냄새가 구수합니다. 김칫소는 매울 것 같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언니 아! 해봐 내가 만든 쌈 줄게”

“내가 먹을 거야”

“아니 아! 해봐 내가 언니 주려고 맛있게 만들었어. 진짜 맛있어 언니 도전정신! 도전해 봐” 얼떨결에 배추쌈을 받아먹었습니다.      


“어때 언니 맛있지?”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며 빙글빙글 웃습니다. 짭짤한 새우젓과 돼지고기 그리고 매콤한 김칫소가 어울려 맵지만 맛있습니다.

“응 맛있어” 눈물이 찔끔 나서 붉어진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은 눈빛을 반짝이며 돼지고기와 김치를 신나게 입에 넣고 있습니다.


“빨간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가 만들어진 사연 이야기해 줄까?” 엄마는 아는 것도 많습니다. 고춧가루 김치 사연은 뭔지 궁금해서 돼지고기쌈을 들고 엄마 이야기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 넣었습니다. 맛있습니다. 밥도 한 숟갈 떠서 먹었습니다. 김치와 먹는 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할머니께서 김치에 요술이라도 부리신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는 소금에 절인 김치를 해서 먹었지. 동치미 같은 김치말이야 고춧가루는 임진왜란 이후 들어왔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독초로 인식해 관상용이나 잡초로 알고 키웠어. 그러다 현종 임금님 때 비가 안 와서 농작물과 풀, 나무들이 다 말라죽은 거야.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없어서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거나 아파서 죽거나 했지. 산천에 나무가 다 없어지고 소금값까지 엄청 비싸서 구하기 힘들었어. 그래서 김치를 담글 소금을 아끼기 위해 고춧가루와 젓갈을 이용해 지금의 고추 양념을 한 맛있는 김치를 만들게 되었지. 조상님들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먹기 어려웠겠지?”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김치가 자기네 거라고 우기는 방송을 보았어요.”

“그래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야. 고려시대 책에 ‘장에 담근 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우내 반찬이 되네’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봐서 우리 김장의 문화는 천년도 훨씬 넘었단다. 이렇게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김장 문화는 우리가 잘 지키고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우리 미래를 위한 일이란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김장 김치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키고 왔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조금 더 큰 것 같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설에 떡국 먹으러 오너라”

“네 설날에 와서 김장독 속에 묻어둔 김치와 떡국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김치 담은 통을 들고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탔습니다. 1박 2일 김장 여행이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다들 피곤한지 열차 안에서 도롱 도로롱 코 고는 소리가 가만가만 들려왔습니다. 동생은 아까 먹은 보쌈 꿈을 꾸는지 입맛을 다시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집에 가면서 햄버거 먹을까?”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아니야 엄마 집에 가서 김장김치 해서 밥 먹자” 나는 아까 먹었던 김치 생각이 나서 군침이 돌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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