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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May 15. 2023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오른팔

오른팔에 대하여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오른팔. 설마 잘라 버린 건 아니겠지? 오른손을 옮겨보려 했지만, 오른팔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꼬집어도 전혀 감각이 없다. 수술이 잘못된 건 아닐까? 왼손으로 잡은 오른팔은 차갑고 축축한 생고기 같았다.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더럭 났다. 


제주 시내는 비가 오고, 한라산엔 눈이 온다고 했다. 일정에 없었지만, 가족들은 눈 쌓인 한라산이 멋지다는 이야기만 듣고 서울로 떠나기 전날 다시 못 올 기회라도 되는 듯 서둘러 택시를 타고 한라산 국립공원 영실 탐방로까지 갔다. 여행 3박 4일 일정 중 마지막 날이었다. 사진만 몇 장 찍고 오자며 올라갔다. 겨울 한라산의 눈꽃은 환상 그 자체였다. 사진에서 보던 아름다운 광경들이 눈을 돌리는데 마다 있었다. 신선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하얀 눈밭에 검은 까마귀 떼가 모여 있었다 얼음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과자를 뿌려주자 푸드덕거리며 많은 까마귀가 모여들었다. 까마귀의 눈빛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큰딸은 발이 아프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남편은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고 한다. 까마귀들이 따라오며 깍깍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백록담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와 있었다. 산 위에 올라오니 구름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다시 휘감아 오르며 솟구치는 용오름 현상은 장엄하고 신비했다. 산에 홀린 것 같았다. 정상 근처 노루샘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내려가지? 올라오던 영실 쪽은 눈이 조금씩 녹고 있었고 밧줄로 된 펜스가 있어서 잡고 천천히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기 더 쉽다는 남의 말만 듣고 남편은 산을 넘어 어리목 쪽으로 가자고 했다. 초행길에 등산 장비도 없이 산을 넘어가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라고 반대하고 싶었지만, 여행 와서 싸우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은 안개가 슬금슬금 올라오며 눈이 내렸다. 붙잡고 내려갈 데도 없었고 스키장처럼 미끄러웠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내리는 눈이 공포로 다가왔다. 조난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둥거렸고, 미끄러지며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결에 짚은 오른쪽 손목에 통증이 왔다. 작은딸이 근처 표지판을 보고 119에 전화했다. 구조대가 와서 아픈 팔에 깁스하고 구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응급실로 갔다. 깁스를 한 채 서울로 왔고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했다.      


남편과 마지막 여행을 생각하고 떠난 제주도에서 팔이 부러져 돌아왔다.

한동안 병원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래 생각했다.     

육 년 동안 일식집을 했다. 남편의 고집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매출이 떨어지자, 나에게 맡기고 취직했다. 술집은 내게 너무 끔찍한 일터였다. 하지만 생활비가 아쉬워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게를 내놓았지만, 월세가 높아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대기업유통업체에서 일하며 아파트 빚도 많은데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서 다른 장사를 또 시작했다. 뒤처리는 내 담당이 되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혈관 염증이 생겨 일 년에 열흘씩 항생제 투여를 해야 했다. 그런 몸을 이끌고 장사를 하다 보니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거기에 혈압과 당뇨, 고지혈증까지 왔다.      


발단은 아파트 당첨이었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 들었던 내 청약 저축 통장을 이용해서 신청한 아파트가 당첨되었다. 신용카드대출로 계약하고 바로 팔아버리려고 했었는데 공시지가에 70%까지 대출이 가능했었다. 대출로 잔금을 치르고 입주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남편은 나에게 의논도 없이 대출을 더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출이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자를 못 내면 은행에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고 생각하니 밤에 잠이 안 왔다. 내 명의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과 난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만 나왔다. 남편만 믿고 있다가는 길바닥으로 쫓겨날 것 같았다.      

차라리 이혼하자 그리고 있는 재산을 나눠 살아야겠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팔이 부러져 돌아왔다. 이혼하자고 하니 남편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내 명의로 된 가게들을 다 정리하고 내 명의로 된 대출도 다 갚아 주었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등을 밀어줬다.

어릴 적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문예창작과에 아이들의 도움으로 원서를 냈다.

이 나이에 합격하게 될지 몰랐는데 합격 문자를 받고 날아갈 것 같았다. 

오른팔의 희생으로 나의 인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른팔이 다치지 않았다면 아직도 가게를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오른팔은 새로운 팔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오른팔 다친 것을 계기로 나의 주장을 내세우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팔을 통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그 가는 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이제는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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