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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un 16. 2023

기차와의 추억

행복한 인생

기차는 추억이다. 기차는 그리움이고 나의 안식처이자 고향이다.

기차는 오랫동안 나의 삶과 함께했다.     

얼마 전 작은딸과 기차를 타고 강원도 내 고향으로 힐링 여행을 가면서 옛 추억에 잠겨보았다.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정확하게 오전 9시 45분이 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기찻길 옆이었다.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 이 학년까지 살았다. 그래서인지 기차 소리가 들리면 집에 온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한다. 집이 기찻길 옆이라 어릴 때 기찻길에서 많이 놀기도 했다. 기찻길에서 작은 자갈돌을 주워서 공기놀이도 했었다.     


어릴 적 추억한 조각이다.  겨울날 어슴푸레 동이 틀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원주역에 도착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른 채 엄마 손을 잡고 꿈결 같은 안개로 싸여있는 원주역에 내렸다.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면서 대합실에 들어섰다. 대합실 가운데 놓여있던 난로에서는 주전자가 김을 내며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대합실 안은 포근했다. 엄마는 역 근처 가락국수 가게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사주셨는데 처음 먹어보는 가락국수는 따끈하고 구수했다. 그때 엄마는 엄마의 언니 집에 가는 길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안개에 싸인 원주역과 라푼젤의 성처럼 보였던 급수탑이 신기해 보였다.  


그 후 나이가 들어 직장을 다니다 강원도가 고향인 사람과 결혼했다.

시댁은 강원도에 있었고 우리는 서울에 살았다. 시댁에서 모내기, 벼 베기, 동네잔치가 있으면 수시로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역으로 갔다. 시댁은 산골이라 기차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횡성까지 간 뒤 장을 봐서 버스를 타고 시댁으로 가면 새벽차를 타고 가도 점심이 지나 있었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늘 손님이 많았다. 차례 지내고 음식상 차리고 아침 먹고 나면, 인사차 들리는 이웃분과 친척으로 붐볐다.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술상, 다과상만 차리다가 명절이 지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버스는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면서 달렸다. 멀미로 힘들었지만, 원주역에 도착해 매점에서 사이다 한 캔을 사서 마시면 속 시원하고 편해졌다. 서울로 돌아오면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차 안은 더 아늑하게 느껴졌고 나는 정신없이 잠이 들곤 했다.    

  

어느 해 집안에 일이 있어 동서와 함께 시댁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시어머님은 무거운 음식 보따리를 들어다 주시며 기차표를 사다 주셨다. 기차를 타고 보니 비둘기호였다. 비둘기호는 완행열차로 가격이 저렴한 대신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철길이 하나였던 이십여 년 전 새마을호 무궁화호 기차를 먼저 보내고 철길이 비어야 다시 달리곤 했다. 그리고 모든 역에 정차하다 보니 새마을호로 2시간 걸릴 것을 3~4시간 걸려 올라오면서 동서와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했었던 일이 기억난다. 오랫동안 기차에 앉아 오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작은딸이 멀미가 심했다. 시댁으로 갈 때 기차는 늘 편안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교통편이었다. 청량리역 앞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대신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두말없이 따라나서곤 했다. 한동안  롯데리아 열차, 노래방 열차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기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던 일들을 지금도 즐겁게 얘기하곤 한다.     

좌석표 구매를 못 했을 땐 카페 열차 안에 있는 음료수자판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기도 했다. 옆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뻗었던 다리를 치우고 길을 내주기도 했다 큰딸은 등산 다녀오시는 아저씨들과 이야기하며 놀다가 과자를 얻어오기도 해서 같이 웃으며 우리 과자도 갖다 드렸다. 

      


이제는 횡성까지 KTX 역이 생겼다.  청량리역이 아닌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이면 횡성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 한 번만 타면 시골 시댁에 갈 수 있게 되어 시간도 단축되고 주로 횡성역으로 다니다 보니 원주역, 청량리역에는 갈 일이 별로 없게 되었다. 편리해지긴 했지만, 나의 어릴 적 추억과 아이들의 어릴 적 추억이 담겨있는 원주역과 청량리역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묵호역에 도착했다. 상념에서 벗어나  이번 여행은 어떤 일이 있을지 설레며 묵호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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