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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장아찌

by 황현경

김장철이 다가오면 먼저 냉장고 정리를 한다. 새로 만들 김장 김치를 넣어둘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는 두 개 있지만 이것저것 여러 가지 가득 들어 있어 정리하지 않으면 새로 만드는 것들을 넣어 둘 데가 없다. 욕심이 많아서 일거다. 뭐라도 버리는 게 아까워서 넣어놓고 잊어버리고 또 다른 것들을 담아 놓는다. 뒤 베란다에 있는 김치냉장고는 보관용이다. 혹 쌀이 많으면 벌레라도 생길까 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기도 한다. 김치냉장고 안에는 몇 년 전 만들어 놓았던 양파장아찌가 김치통으로 반 통 남아 있었다. 7년 전 만든 장아찌이다.

그해 남편은 밖으로만 돌았고 난 그런 남편과의 말다툼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심하게 우울증까지 와서 만사가 다 귀찮고 서글프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봄이 오고, 사월이 지날 즈음이었다.

언니, 동생 하며 살갑게 지내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안에서 양파 농사지으시는 지인께서 갑자기 몸이 아프시다고 했다. 양파도 캐야 하고 판매도 해야 하는데 어쩌냐고 걱정하셔서 도와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그 집 양파는 단단하고 달고 아삭아삭한 사과처럼 맛있는 양파라고 했다.

“언니 양파 좀 팔아줘.”

동생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서너 자루 사기로 하고 돈도 미리 지불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남편과 아는 남자들이 서로 어울려서 양파 수확을 하고 주문받은 집마다 양파 배달 중이라며 얼른 나와서 양파 가져가라고 한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집 앞으로 내려갔다. 봉고차에는 양파 자루가 그득했고 주문했던 양보다 더 푸짐하게 양파를 내려놓고 다음 집으로 서둘러 가버렸다. 우울증으로 양파 들어 올릴 힘도 없었지만, 서너 자루의 양파를 집안으로 끌어다 놓고 이걸 어쩌나 고민했다. 마침, 방송에서 양파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양파의 효능은 ‘식탁 위의 불로초’라고 불릴 정도이며 고대 올림픽 선수들의 체력 보강을 위해 양파즙을 먹었다고 할 정도이다. -중략-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을 잡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양파는 혈관에 있는 기름, 뱃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을 예방하고 황하 알릴 성분이 체내에 들어가면 알리신으로 변하기 때문에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혈액순환이 좋아져 위장 기능을 좋게 한다. 콜레스테롤을 저하해 심장병 같은 성인병 예방효과도 있으며 피로 해소에도 좋은 강장식품이다. -나무위키에서 발췌함.-



양파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효능이 있는 줄 몰랐다. 신문지를 거실에 넓게 깔아 놓고 양파 자루를 열었다. 탱글탱글한 양파들이 반짝이며 거실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양파를 한 개씩 까서 양푼에 담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매워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혼잣말을 지껄이며 양파 세 망을 까서 깨끗이 씻었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서러움이 밀려와 엉엉 울면서 양파를 씻었다. 남편만 믿고 한 결혼인데 배신이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학벌 없는 며느리, 부모 없는 며느리, 아들 못 낳은 며느리라고 온갖 궂은일은 다해도 욕은 욕대로 먹으며 살았다. 그래도 남편이 있으니까 했는데 남편마저 배신하다니 이제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깨끗이 씻은 양파를 차곡차곡 담으면서 사이사이 청양고추를 한 줌씩 같이 넣었다. 간장, 설탕, 식초, 물을 섞어서 팔팔 끓였다. 양파가 있는 김치통에 들이부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양파처럼 사람 마음도 그러하리라. 나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지 딴사람을 위해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파장아찌가 한 김 식은 후에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서 넣어 숙성했다. 그렇게 만든 양파는 김치통으로 서너 통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과 나눠 먹고도 아직 김치냉장고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까워서 조금씩 아껴먹고 있다.

양파를 까면서 울던 일을 생각하니 오늘따라 괜히 눈물이 찔끔 나왔다. 오늘 저녁엔 삼겹살에 양파장아찌로 저녁을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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