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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마트 가는 길에

by 황현경

저녁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작년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싱싱함이 흐르는 김장김치를 김치냉장고에서 한 포기 꺼냈다. 시큼한 냄새가 굶주린 후각을 자극한다. 입안에 침이 저절로 나온다. 침을 꿀꺽 삼키고 김장김치를 쭉 찢어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김치가 차고 싱그러웠다.

“음 맛있어!”

배고픈 김에 두어 장 더 뜯어먹고 김치를 잘게 썰었다. 김치에서 나오는 냄새는 향기롭기까지 하다. 김치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없던 입맛도 되살려 주는 김치를 냄비에 넣고 설탕 약간 들기름을 고루 두르고 김치를 볶았다. 치 이익 궁중 팬이 가열되면서 김치가 맛있게 볶아졌다. 찬밥도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궁중 팬에 넣었다. 김치의 붉은 물이 밥과 어우러져 윤기가 난다. 한쪽 프라이팬에 달걀부침 두 개 했다. 아쉽게도 달걀은 그게 전부 다였다. 아이들 밥 위에 한 개씩 올려 주었다. 김 가루도 조금, 깨도 조금 뿌려서 잘 비빈 뒤 먹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고 있습니다!”

작은딸은 벌써 한입 입에 물고 픽 웃는다. 배가 아주 고팠었나 보다.


밥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산책을 겸해서 마트에 달걀을 사러 가기로 했다. 작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며 따라나섰다. 바람이 선들선들 불었지만, 날씨가 좀 더운 탓에 시원했다. 작은아이가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즐거운 이야기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같이 수업받는 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조퇴!”하고 나가버려서 다들 황당해하다가 빵 터졌다고 했다.

배우는 것이 힘이 들 텐데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아파트 후문 건너에 있는 마트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신호대기 하고 있었다. 길 건너에는 커다란 벚나무 여러 그루 도로변 가로수로 식재되어 있는데 유난히 꽃이 많이 피는 나무가 횡단보도 앞에 있어 봄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둥그런 벚나무가 하나의 꽃처럼 보인다. 둥근 보름달이 환히 비추고 가로등 불빛도 달처럼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무를 휘감고 날아 올라가는 바람을 따라 나비 같은 꽃잎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눈처럼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달빛 아래 함박눈 같은 꽃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환상적이었다.

하늘에서 메리 포핀스가 우산을 타고 내려온다고 해도 하나도 신기하지 않게 보일 것 같은 신비한 밤이었다. 길을 건너 골목을 돌아 우리 마트로 갔다. 그곳을 식구들은 도깨비마트라고 지칭한다.


몇 년 전 시어머니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종일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상을 차리려면 상위에 까는 전지가 있어야 하는데, 집에 한 장밖에 없어 급하게 사러 나왔다. 근처에 있는 수협으로 달려가 봤다. 다이소가 있어서 당연히 전지를 팔 거로 생각했는데, 없었다. 저녁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라도 가볼까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마음은 급한데 딱히 생각나는 곳도 없었다. 수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다니던 길이 아닌 골목으로 들어섰다. 왜 그곳으로 갔는지 나도 알 수 없지만 길을 조금 헤맨 것 같았다. 얼른 가서 탕국을 마저 끓이고 밥도 안쳐야 하는데 마음은 바빴지만, 전지를 구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에 골목 끝 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낯선 길이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가보았다. 처음 보는 마트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못 봤던 건지 아니면 새로 생긴 마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보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마트가 상당히 크고 물건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다행히 전지가 커다란 통에 꽂혀있었다. 급히 사서 집으로 돌아와 제사를 잘 지냈다. 그리고 그 후에 그 마트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일 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수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 마트를 다시 발견했다. 우리 아파트와 멀지 않은 곳 골목 속에 있어 몰랐던 것 같다. 도깨비가 장난이라도 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우리 집에선 그 마트를 우리 마트가 아닌 도깨비 마트라고 부른다. 우리는 꽃비가 내리는 길을 따라 우리 마트에 갔다. 아이스크림과 달걀 한 판을 사서 꽃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신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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