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해인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 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유년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내 혼에 불을 놓아』-이해인 제2 시집 분도출판사 1979년-
이해인 작가님의 제2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중에 실린 「어머니」 전문이다.
오래전 흑백 사진으로 영주 부석사에서 날아갈 듯 하얀 저고리 치마를 입고 고운 양산을 쓴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와 결혼 후 오빠를 낳고 풍기에서 사셨다. 그곳에서 사실 적에 정월 대보름이면 집안 여자들이 모두 모여 윷놀이하고 맛있는 거 먹으며 보름 동안 놀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빛났었다. 생활력 없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자동차정비소 구내식당 일을 하셨다.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우리 엄마에게선 늘 음식 냄새가 났었던 같다. 구수한 밥냄새 같기도하고 써늘한 바람 냄새 같기도 한 엄마의 냄새. 엄마는 일이 많고 돈은 없어 늘 절약하시면서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전 엄마와 손을 잡고 연희동에서 동교동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때는 버스 환승이 없었을 때였다. 엄마는 연희동에서 동교동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해서 버스비 한번 아끼려고 걸어가셨다. 나는 엄마와 손을 잡고 걷는 게 좋았다. 늘 바쁜 엄마는 나와 같이 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게 나에겐 불만이었다. 걷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의 따스하게 꼭 쥔 손이 참 좋았다. 벼랑 끝을 걸어가는 버선발처럼 아슬아슬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던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