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기 전엔 늘 죽고 싶었던 적이 있다. 20대를 우울증과 함께하면서 삶보다는 죽음이 내겐 좀 더 가까웠다. 몇 번의 자살시도와 폐쇄병동 속 생활은 여기가 내 바닥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20대 초중반이 그렇게 지나갔다. 행복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건지 늘 궁금했던 시절이었다.
외모에 대한 강박이 심해서 어딜 가든 진하게 화장을 했으며 굶어가며 비정상적인 다이어트를 했다. 추운 한겨울에도 얇고 짧은 옷들을 입었고 눈에 띄는 화려한 악세사리들을 좋아했다.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들을 예쁘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과한 다이어트로 인해 반년 동안 생리가 끊겼다. 그 후유증은 일 년을 갔다.
삶이 너무 피폐했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모두. 휴학을 하고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가질 않았다. 내 안의 우물을 채우면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아침마다 요가를 했다. 살아내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사람도 변하고 취향도 변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짙은 화장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넌 자연스러운 게 제일 예뻐’라는 말을 그제야 믿게 됐다. 겨울엔 얇고 짧은 옷 대신 패딩을 꺼내 입었다. 과하고 인위적인 것들보다 자연스러운 것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뭐든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조금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못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인정이 나를 해방시켰다. 겨우 내 마음 하나가 편해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많은 것들이 해볼 만하게 느껴졌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다. 이번 새해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래된 이 우울증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하겠지만 이 아이와 공존하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다. 민낯으로 다니는 매일. 그저 소소하게 끼니를 챙겨 먹을 뿐인 하루들. 별 것 아닌 내 일상. 이젠 감히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