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힘
며칠 전부터 오타가 잔뜩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손가락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너무 잦은 오타에 노트북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맥북 키보드 오류’라고 검색하니 비슷한 사례들이 쏟아졌다. 다행히 애플에서는 해당 오류에 대해 구매 후 4년 간은 무상 수리를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업 상 매일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데 수리를 맡기려니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다. 노트북을 끼고 사는 내가 과연 노트북 없이도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일단 근처의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미리 예약을 했던 터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내 노트북을 봐주신 1번 데스크의 담당 직원분은 유난히 친절하신 분이었다. 수리 절차와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상냥하신 말투와 목소리 덕분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문득 친절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생애 첫 AS 센터 방문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데스크에서 마주한 따뜻한 서비스는 마치 내 노트북이 곧 안전하게 다시 돌아오리라는 걸 보장하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불안했던 마음이 놓이고 1번 데스크 직원분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나를 불친절하게 맞을 수도 있었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신 덕분에 하루의 말미에 상쾌한 기분이 차올랐다.
기분 좋게 생에 첫 노트북 AS를 맡기고 남자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카페에 방문했다. 무척 외진 곳에 있어 평일 저녁 시간에 방문하면 사람도 많지 않고 아늑한 곳이었다. 저녁을 따로 먹지 않아 커피와 함께 파스타를 주문했다. 토마토 라구 파스타를 주문했더니 파스타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다며 올리브 치아바타를 서비스로 받았다. 이런 예상치 못한 친절이란. 오늘은 친절의 날인가 보다. 말씀대로 파스타에 빵을 찍어먹으니 정말 최고의 궁합이었다. 파스타를 돌돌 말면서 오늘부로 이 카페는 단골 리스트에 올리자고 남자친구와 합의를 봤다.
작은 친절들이 모인 덕분에 오늘 나의 하루는 상큼하게 마무리되었다. 노트북의 고장을 발견하고 잠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수리를 잘 맡겼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덕분에 친절이 가진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베푼 친절 덕분에 상쾌한 하루를 보냈으니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노트북이 없는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이제부터 슬슬 생각해봐야겠다. 노트북이 무사히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