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취향이 조금 바뀌었을 뿐
“너 요즘 탈코르셋 하니?”
(*탈코르셋 :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운동으로 예컨대 짙은 화장이나 렌즈,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 / 네이버 지식백과)
얼마 전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듣고는 기가 찼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누구보다 외모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교복 주머니에는 항상 공주 거울을 꽂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든 외모를 체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누가 봐도 놀랄만한 사이즈의 왕거울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닌다. 거울은 어느새 나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소지품이 되어버렸다.
친구의 질문을 받고 내가 외적으로 너무 나태해진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돌아봤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내려놓긴 했다. 늘 풀메이크업 상태를 고수하던 과거와는 달리 눈썹만 가볍게 그리고 다니고, 주로 레깅스의 차림의 편한 옷들을 선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을 무렵, 반짝거리는 커다란 귀걸이들을 사는 걸 좋아했다. 매일 등굣길에 옷과 어울리는 귀걸이를 매치하는 게 일종의 작은 취미와도 같은 거였다.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높은 구두도 종종 신고 다니곤 했다. 어렸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그 귀걸이들이 영영토록 예뻐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는 건 나 역시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크고 반짝이는 비즈들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진하게 하는 화장보다 맨 얼굴일 때의 내 얼굴이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맨 얼굴로 다니니 너무 편했다..! 가끔 가다 하는 연한 피부 화장은 가면을 쓴 것처럼 너무 갑갑하게 느껴져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자 편함이 덩달아 따라오니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또,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는 것보다 핏이 잘 맞는 단정한 옷을 입을 때 라인이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날씬해 보이겠다고 추운 겨울에도 얇고 짧은 옷들로 연명하던 어린 시절이 문득 안쓰러워지는 순간이다. 지금은 레깅스에 단화를 매치하는 차림을 가장 좋아한다. 몸에 편한 게 눈에도 예뻐 보여서 참 다행이다.
이런 외적인 변화가 친구의 눈에는 탈코르셋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 하긴, 늘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민낯으로 수수하게 다닌다면 그런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하지만 탈코르셋도, 심경의 변화도 아닌 그저 취향이 조금 바뀌었을 뿐. 나만의 방식으로 여전히 코르셋은 조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