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만 캥거루족 시대, 그게 나야

아빠처럼 살 수 있을까?

by 윤사강

32만 캥거루족 시대. (캥거루족 :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 /지식백과) 나도 당당히 그 일원을 자처한다. 27년을 단 한 번의 자취 경험도 없이 부모님 밑에서 안온하게 자랐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은 앞으로도 무탈하게 이어지리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말이다.


시작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의 거대한 인사이동이 있고 난 뒤 삼성 전자의 젊은 부사장이 탄생했다는 기사는 연일 메인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때, 불행히도 우리 아빠는 임원직을 연장하지 못했다. 퇴사를 선고받은 것이다. 평사원으로 삼성에 입사해 20년을 성실히 근무하며 임원을 다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룩했지만 그 끝은 20년이라는 근속기간에 비해 너무나도 신속했다.


그래도 아빠는 임원이었기에 퇴사까지 2년가량의 유예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아빠의 퇴사 확정 소식을 듣고는 머리를 후드려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 충격 역시 2년 동안 서서히 희석되어갔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결국은 그 마지막 순간이 도래해버렸다. 어느 날, 아빠는 저녁을 먹으며 담담하게 퇴사일이 확정되었다는 폭탄 같은 뉴스를 던졌고, 그날 저녁은 더 이상 밥을 씹어 넘길 수가 없었다.


아빠는 우리 앞에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엄마의 말에 의하면 기분이 아주 많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인생의 절반 가량을 쏟아부은 회사를 타의에 의해 떠나야 하는 그 마음이란.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빠의 마음은 괜찮은 걸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마음을 괴롭게 했다.


회사에 ‘잘리는’ 일은 그저 남들의 일인 줄만 알았지 그게 우리 집, 우리 아빠의 일이 될 줄이야. 아빠의 퇴사 이후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의 벌이는 그저 나 혼자 쓰면 그만인 수준에 불과한데.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아빠의 퇴사는 내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의 시점이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


아빠는 오늘 공식적으로 퇴사를 했다. 아빠의 인생에 커다란 무언가가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다. 아빠가 삼성의 임원이라는 사실이 늘 내겐 자부심이었는데, 이젠 내가 아빠의 자부심이 되어드려야 하는 순간이 점점 오고 있다고 느낀다. 그와 더불어 내가 이렇게 캥거루족처럼 살 수 있는 날도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겠지. 아빠의 퇴사가 내게도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날이다. 나도 아빠처럼 살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누군가를 구독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