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 다르지 않았어야 했나
삶은 다 똑같다면서도 그래도 나는 뭔가 다르지 않았어야 했나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 한 번쯤 한 적 있다. 사실 꽤나 자주 한다. 길을 걷다가 캐스팅 매니저에게 명함을 받고 데뷔를 하고 연말 시상식에서 공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무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시점부터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내가 위안을 얻었던 곳은 우습게도 나의 공상 속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부터 더 이상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까지 말이다. 심심한 날에는 근사한 곳에 놀러 가는 상상을 했고, 가끔 외로울 때에는 나를 지독하게 아껴주는 누군가가 있는 상상을 했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보다 상상 속에서 더 완벽했다. 공상에서 벗어날 땐 늘 자괴의 순간이 찾아왔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 또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를 키워낸 팔 할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아무 대가 없이 사람을 믿었던 어린 날도 있었다. 그때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쉽게 좋아져 버려서 한때는 세상이 낭만이었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땐 화려한 장신구들을 모았다.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만 그때는 이것저것 걸치면 걸칠수록 예뻐 보일 줄 알았다. 어리석게도 어렸던 어여쁜 날들. 조악하게 엮인 비즈들과 가짜 보석들은 이제 유치해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 사서 방치되고 있는 귀걸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십 대 초반의 내가 가끔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뭐든 지나고 보면 다 그런 것 같다. 한때는 소중하고 예뻤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혹시 내가 진심이라고 쥐어줬던 마음들도 잡동사니 취급을 받았던 건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진부하지만 시간을 돌린다면 조금은 다르게 행동하고 싶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삶을 산다. 해야 할 일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면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생각의 끝엔 언제나 막막함이 남는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더 이상은 즐길 수가 없다. 삶조차도 그런 것 같다. 이젠 그 어떤 것도 취미로 삼을 수 없는 나날들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