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만큼 나를 아끼기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느낀다. 이젠 렌즈나 안경을 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언젠간 안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또 매일 서클렌즈를 낀다. 눈은 가진 게 딱 하나씩 뿐인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혹사시키게 되는 걸까. 다시 사면 그만인 물건은 애지중지하며 아껴 쓰는데 왜 바꿀 수도 없는 내 몸은 함부로 막 대하게 되는 걸까.
비단 몸 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건을 아끼는 것만큼 내가 나 스스로를 아껴본 적이 있었나. 물건을 알뜰하게 잘 쓰기로 소문난 만큼 나 자신도 살뜰히 잘 돌봤다면 정신과 문턱이 닳도록 이렇게 들락날락할 일도 없었을 테지.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겠냐만은 그래도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살았던 지난 이십 대가 못내 아쉽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사하며 바뀐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보다 살필 수 있도록 도움을 적절히 주시는 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처방해주시는 약물과 적절한 조언들 덕분에 나의 정신건강은 꽤나 안정을 찾아갔다. 물론 온전히 약물과 치료만의 힘은 아니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 덕분도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우울에서 허덕이는 대신 보다 나를 돌볼 수 있는 이십 대의 2막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걱정이 과해 도를 지나칠 때면 머릿속의 ‘그만해’ 버튼을 눌러 생각을 차단한다. 이건 내가 예전부터 자주 사용해오던 방법인데, 머릿속에 ‘그만해’ 버튼을 하나 만들어놓고 원치 않는 생각이 자꾸 들 때면 그 버튼을 누르고 생각을 그만하는 거다.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자꾸 훈련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만해’ 버튼을 눌러서 생각을 차단하는 게 쉬워진다. 나 혼자 만들어낸 방법인데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좋은 방법이라고 하셔서 그 뒤로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생각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막아줘서 아주 유용하다.
외적으로는 강박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멈추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든 풀메이크업 상태로 있어야만 하는 강박 아닌 강박도 내려놓게 되었다. 예전과 다르게 이젠 짙은 아이라인이 없는 나의 생 눈도 나름 예뻐 보인다. 여전히 완벽하게 세팅된 연예인들의 모습은 너무 예쁘지만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 또한 예뻐할 수 있게 되었다. 2막이라는 단어에 실로 어울리는 변화였다.
앞으로도 지갑을 아끼는 것처럼, 애플 워치와 핸드폰에 보호필름을 붙이고 쓰는 것처럼 나 자신을 더 아끼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가는 남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안과는 꼭 가봐야지. 어쩌면 내일은 서클렌즈가 아닌 안경을 쓰고 출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