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을 기다리며
나의 십 대 시절엔 이십 대에 대상을 받고 정점을 찍어버린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했다. 연예인들의 전성기는 빠르면 그들의 십 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이십 대 전반을 걸쳐 삼십대로 이어진다. 나의 아이돌 가수들이 이십 대 초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여 찬란한 이십 대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막연하게 나의 이십 대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턱을 넘은 나의 이십 대는 그들의 그것과는 사뭇 결이 달랐다. 재수생이 된 나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며 일 년을 보내야 했다.
대학에 입학했어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 학업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일 년을 다니고 일 년을 쉬고, 또 일 년을 다니고 일 년을 쉬는 일이 이어졌다. 어찌어찌 6년을 다녀서 학교를 졸업하고 26살이 되었지만 인생의 성취란 대학교 졸업장 하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졸업식에 받으러 가지 않아 실물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분명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26살의 인생엔 고작 그게 전부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아는 오빠들과 함께 작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대기업에 입사한 동기들도 있었지만 그게 내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정상 궤도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쉽지 않은 일이었다. 2년째 함께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 미래를 걱정한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십 대 후반인데 이게 잘 안되면 나는 어떡하지. 이십 대에 꽃을 피워낸 나의 아이돌과 내 처지가 종종 비교되기도 했다.
각자 피어날 계절은 다르다는 말. 안다. 알지만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강박이 올가미처럼 목을 졸라올 때는 그런 말들이 무용했다. 아빠의 퇴직을 앞두고 나라도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은 이십 대의 끝자락이 초조해졌다. 내겐 삼 년이 채 안 남았는데 이 시간들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터넷으로 장난 삼아 봤던 사주에서 내 인생의 전성기가 70대라는 결과를 받고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전성기를 맞이하려면 70대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마냥 맹신하진 않았지만 내 인생의 전성기는 2-30대에는 오지 않는 걸까 싶어서 다소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내게 친구가 장난스레 해주었던 말. 말년이 좋아야 좋은 거야.
맞다. 사실 모든 게 그런 것 같다.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터넷 사주가 틀려서 내 인생의 전성기가 더 빨리 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70대에 전성기가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 테니 언제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될 것이다. 그러자 인터넷 사주 결과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나의 남은 이십 대는 내게 어떤 삶을 데려다줄까.
2년 3개월. 삼 년이 채 안 남은 짧은 시간이지만 또 무언가를 하나 새로 이루어내기에는 충분한 시간. 목표로 하고 있는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남부럽지 않은 이십 대가 되리라. 아이돌 같이 화려한 이십 대는 아니겠지만 길가에 피어난 들꽃 같은 이십 대의 완성을 꿈꾸며. 각자 피어날 계절은 다르다는 말을 또 한 번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