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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Sep 05. 2022

비가 오는 날의 기억

비 오는 날에 대한 단상

비가 오는 날이면 유난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아마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감독일 테지. 4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덕에 오는  생각이  때마다  번인가 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비 오는 신주쿠 공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 ‘다카오’와 ‘유키노’라는 여자는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비 오는 날마다 그들의 만남은 이어지고 다카오는 유키노를 위해 구두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갈 무렵 그들 사이에는 말하지 못할 무언의 감정이 남게 된다.


비 오는 날의 우연한 만남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현실의 장마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어쩐지 영화에서만큼은 문득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언제나 영화의 말미에 흘러나오는 하타 모토히로의 ‘rain’을 두고두고 돌려 들었다. 그게 <언어의 정원>을 보내주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일본어라 가사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가 끝나며 흘러나오던 노래의 감성을 잊지 못해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플레이리스트에서 노래를 찾아 듣기도 했다. 음악의 힘이란 정말 신비했다. 순식간에 그 감각을 그대로 재현해내니 말이다.


비가 오는 날엔 항상 비가 왔던 날을 떠올린다. 기억은 기억을 덧입히며 존재한다. 다행인 걸까. 비 오는 예전 어느 날엔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이제는 다 희미한 걸 보면 그 후로 비 오는 날마다 많은 기억을 쌓았나 보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서점에 다녀왔던 것. 책을 구매할 생각도 있었지만 구매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인상적인 문장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의 신선한 문장을 보면 글을 계속 써 내려갈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발걸음이라고나 할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지하에 위치한 서점으로 내려가는 길은 설렘을 동반했다. 내가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큰 출판사에서 출판한 유명한 작가들의 책들을 한참 훑어보는데도 내가 원했던 짜릿함은 오질 않았다. 유려한 문장이었지만 그건 그들만의 것이었다. 내가 흉내 낸다고 한들 흉내 낼 수도 없는 것이었고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도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문장들이었다. 서점에 온 이유를 상실한 나는 금방 흥분이 가셨다.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 어쩌면 글을 계속 써 내려갈 힘은 다른 작가의 책 속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번 비가 오는 날에 떠올릴 기억은 새로운 깨달음의 순간이리라.


기억은 어떠한 것을 매개로 쉽게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엔 비가 왔던 날을 떠올리는 나처럼 누군가의 생각도  멀리 어딘가까지 날아가겠지. 빗소리를 듣는 오늘도 <언어의 정원>, 그리고  오던 지나간 날들을 추억했다. 그래서 비에 대한 글을 써버리기로 마음먹은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짧은 기억. 당신의 기억은 오늘 무엇을 추억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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