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의 배움
내 나이 스물일곱. 겨우 내 몸 하나를 건사할 만큼만 번다. 경제인구로서 집에 생활비를 보태는 건 고사하고 부모님께 용돈조차 드리지 못하는 나는 내 몫의 밥값을 하기 위해 저녁 식사를 돕고 있다. 물론 자의에 의한 건 아니었지만 집에 아무런 경제적 보탬도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시키는 것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퇴근 후 나는 때론 계란을 풀기도 했고 감자를 까기도 했으며 양파를 볶기도 했다. 엄마는 주방을 지휘했다. 불평을 가지려다가도 그녀의 일사불란한 지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를 끝내고 잠시 쉬려고 하면 그녀는 금세 다른 일을 맡겼다. 정신없이 맡겨진 일들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완성되었다.
저녁 식사를 돕지 않는 동생은 엄마가 저녁을 먹으며 부채질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나는 왜 엄마가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부채질을 해야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불 앞에 서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알게 된 후 나는 매번 선풍기를 가져다 틀었다. 순간을 함께한다는 건 이해를 함의했다. 나는 엄마와 요리를 함께함으로써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퇴근 후 엄마와 함께 저녁을 하는 것은 일상의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몸이 피곤하거나 예민한 날이면 퇴근 후에 저녁을 도와야 하는 게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의 추억을 쌓는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는 없겠지. 하루하루가 다 돌아오지 않는 찰나였다. 결혼을 해서 나가 살거나 엄마 아빠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분명 그리워질 순간들일 것이다. 짜증을 내서 추억을 망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하며 감자나 양파는 익으면 투명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찌개에 넣어야 할 물의 양을 알게 되었으며 에그 스크램블을 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이 집을 나가게 되는 날까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겠지.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배운 가장 큰 것은 요리하는 방법이 아닌 그녀를 이해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에그 스크램블을 하는 방법 따위는 잊게 되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배움. 엄마는 매일 저녁 그걸 내게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