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제법 나쁘지 않아
내 나이가 두 자리 수가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교우 관계에 서툴렀다. 아직도 기억한다. 방에 들어가 혼자 조금 울고 싶다고 말하던 어린아이를. 그런 나를 위해 나의 부모는 기꺼이 대안학교를 알아봐 주었다. 결국 일반 초등학교를 6년 꽉 채워 졸업했지만 만약 일반 초등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지 종종 상상해본다. 만약 그랬다면 나의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만약’이라는 부사를 붙이면 삶은 좀 더 그럴 듯 해진다. 만약 내가 돈이 많다면, 만약 내가 좀 더 예쁘다면, 만약 내가 작가가 된다면. 수많은 만약들이 나를 먹이고 살렸다. 상상 속에서 나는 더 완벽했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들이 자꾸 증발했다. 내 가정 속에서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만약은 힘을 잃었다. 아무리 실감 나게 가정해봐도 현실이 그렇지가 못했다.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이 한 권 생긴다면 완벽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여전히 매일 올리는 에세이의 반응에 연연하는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그런 게 힘들었다. 이상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그럴수록 더 글을 썼다. 내 글이 하찮게 느껴질수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누구나 처음엔 원래 이래. 나의 글에서,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위로받았다. 난 원래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자아가 비대해질 때마다 되뇌었다.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가 서른에 가까워지며 한 말이 있다. 못 쓴 자기 글을 꾸준히 견딜 줄 아는 애가 작가로 사는구나. 마치 요즘 같은 때의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
언젠가 나도 그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올까. 그날이 오게 되면 더는 만약을 습관처럼 사용하지 않게 되려나. 미래를 그린다고 해서 미래에 마음을 둬서는 안 됐다. 언제나 나를 구해낼 수 있는 건 지금의 나 자신뿐이다. 오늘도 또 하나의 실패를 하고 또 하나의 글을 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하루를 살았다. 내가 지금 비록 초라하고 생각보다 비루할지 몰라도 이런 오늘이 있어야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오늘은 실패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나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