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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Jan 28. 2023

눈 오는 밤의 셀프 페인팅

< 작은 집 셀프 인테리어 > 83년생의 집


우리 부부가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2012년 즈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셀프 인테리어', '셀프 페인팅'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우연수집가님! (지금도 꾸준히 블로그를 보며 팬심을 유지하고 있다.) 우연수집가님의 셀프 인테리어는 감동이었다. 어떤 집이던 쓱쓱 칠하고, 필요한 것은 뚝딱뚝딱 만들면 그만의 감성이 폴폴 풍기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그 과정을 블로그를 통해 지켜보며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거푸집에 흙벽돌을 찍어내서 집을 지으셨고, 우연수집가님은 나에게 셀프 페인팅이라는 신세계를 보여주었으니, 나도 할 수 있다!'


 

이사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 이사는 반 포장 이사로 결정했다. 내가 박스를 얻어 미리 포장하고 남편이 센터 아저씨들을 돕기로 협의를 해두었다. 장판은 그대로 박박 닦아서 쓰기로 하고, 도배만 셀프 페인팅으로 대체하기로 결정.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자를 먼저 체크하고,

"원래 이랬어요" 증거 사진



창에 난 구멍을 외로이 막고 있는 뽁뽁이 뭉치와 어지러운 케이블 선


투 톤의 장판



선발대인 빨간 청소기 밀레를 가져와 청소부터 시작했다. 한 명이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 한 명은 싱크대를 맡았다.




싱크대 상판과 벽을 세제로 먼저 박박 닦고, 나머지는 초강력 젯소 페인팅.




젯소 칠 + 흰 페인트 칠
조도는 낮지만, 꼬질꼬질했던 타일이 깨끗해졌다.



냄새에 예민하기 때문에 무독성의 던에드워드 페인트를 샀지만, 그래도 창문을 꽁꽁 닫고 페인팅을 할 수는 없었다. 집안의 문들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 12월의 추위가 매서웠다.



바깥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활짝 열린 창문, 물건 없이 텅 빈 방에 울려 퍼지던 우리의 목소리와 핸드폰 음악 소리가 기억난다.



우리가 선택한 메인 컬러 두 가지로 물든 롤러 스펀지
비닐과 마스킹 테이프로 장판을 보호하기
이런 부분 때문에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젯소로 보수를 먼저 해야했다.


여러 날에 걸쳐 안양과 독산동을 오가며 손을 호호 불며 작업을 했다.








청소와 페인팅으로 완성한 비포, 에프터는!


큰방
해결사 밀레 청소기의 늠름한 자태

이렇게 보니 선반 위에 자리한 화장대가 눈에 띈다. 아직도 나에겐 화장대가 따로 없다.


BEFORE



그리고 작은 방에는 행거와 책상, 옷장을 두었다.




BEFORE





그리고 거실이 없는 이 집의 복도? 통로!




BEFORE








BEFORE

현관





화장실




BEFORE









혹독한 화장실 청소와 벽지 페인팅을 절반 정도 마친 어느 날이었다.



"아, 오빠 더는 못하겠어. 이제 집에 가자. 나 어질어질해."


"그래, 얼른 가자."



창을 열고 작업해서 손과 발이 꽁꽁 얼고 배가 너무 고픈데 페인트 냄새까지 맡아서 멀미가 났다. 정말 순간 이동을 해서 포근한 안양 오피스텔 집 샤워부스 앞에 서있고 싶었다. 둘 다 어깨가 앞으로 쏟아질 듯이 비틀대며 골목을 나와 정류소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을버스가 오지를 않았다.






"아직 버스 안 끊겼을 텐데? 뭐지?"


고요하고, 수상했다.



살살 걸어서 한 정거장 아래쪽을 살피러 내려갔더니, 우리처럼 고개를 빼꼼히 내민 남자가 보였다. 그분에게 다가가자



"눈 와서 마을버스 못 올라온답니다."


 "엥? 이 정도 눈에요?!"




순간 이동은커녕 오히려 걸어서 금천대로까지 내려가야 했다. 뒤뚱뒤뚱 훌쩍훌쩍. 배고픈데 코를 엄청 마셨다. 안양 가는 초록 버스에 앉자 갑자기 따끈한 곳에 들어갔을 때 몸이 풀리면서 찡~하는 느낌이 났다. 안양에 도착했을 땐 눈이 더 흩날리고 있었다.






곧 이사를 나갈 집이지만, 너무나 아늑하고 깨끗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던 그날 밤의 안양 신혼집을 잊을 수가 없다. 5성급 호텔 같은 곳에서 시작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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