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블로그 작가가 있다. 두 아이 엄마이고 미니멀리스트이다.
디자인이 다른 상의 두 벌만을 번갈아 입으며 초등 아이들의 친구나 학부모들을 만나도 부끄러움, 거리낌이 없다던 그녀. 두 벌을 손 빨래해서 늘 정결하게 입을 뿐이라는 친환경적인 그녀. 그녀의 미니멀한 생활에 반해 맥시멀리스트인 나도 구독을 눌렀었다. 비슷하게 돈 없이 시작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동지애를 느꼈고, 그녀의 현명한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오래 팬이었는데, 멋지다!' 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책의 주요 홍보 문구들을 찬찬히 읽었다. 갑자기 우울함이 밀려왔다.
<결혼할 때 산 아파트의 빚을 5년 만에 갚은> 이란 문구에 내 발이 걸려 넘어졌다.
내가 브런치에 지난 10년 간의 시간을 쓴다는 게 무의미함을 넘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친구가 '83년 생의 집'에 사이다는 없느냐고 물었을 때 "영끌로 지금이 제일 힘든 때이고 지금까지의 회상이니 사이다는 없지."라고 말하고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지 못하게 늘어났던 구독자 수를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기에 글의 발행을 누를 때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내가 글 썼다고 다른 분들께 알림 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INFP)
고생하는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만 듣는 게 스트레스이진 않을까, 게다가 시댁과 다툰 이야기만 조회수가 엄청났고 그 후의 이야기들은 읽는 분이 많지 않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그녀는 그동안 열심히 저금한 돈으로, 나는 온통 빚으로 사고 허덕이는 중이다. 돈을 비교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인 것을 비교하려면 당장 주변에도 많다.
나는 글을 쓸 자격... 아니 여러 사람들이 보는 글을 쓸 자격이 내게 있는 가에 대한 부분에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성공으로 이끌 수 있고 여러모로 현명하고 배울 점이 많은 글이 아닌 고생으로 점철된 글. 성공으로의 귀결이 아닌 그저 진행 중인 다사다난한 글.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처음 의도는
글의 분야로 이야기하면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공모전에 낼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브런치에 83년 생의 집을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마침 우리가 집을 사고 정확히 2년 후에 불거진 영끌족 사태에 대한 여론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형편에 맞지 않게 투기를 했으니 자업자득이다. 지옥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같은 글들.
우리는 투기를 한 게 아니라 월세, 전세에 시달리다가 전세 값과 큰 차이가 없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것뿐이었다. 물론 정말 투기를 한 사람도 있겠지만, 통계가 30대와 40대 초반을 가리키고 있으니 정확히 나의 세대였고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고 공감 할 수 있었다. 83년 생임을 제목에 밝힌 것도 나의 세대에 대한 시그널 같은 것이었다. 이런 기획 의도를 글 한 편과 함께 브런치팀에 보냈고 다음 날 수락이 되었다.
시작된 계기를 쓰다 보니... 내가 쓰고 싶었던 건 성공서가 아닌 그저 같은 입장인 내 또래들에게 공감을 표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게 상기되었다.
두 번째는, 나중에 내가 성공한 작가가 되었을 때 83년 생의 집은 작가 수기의 일부가 될 거란 상상, 망상. 당장 이 글로 뚜렷한 성과를 낼 순 없지만 훗날에 내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이런 고생을 거쳐 이 자리에 왔으니 "당신은 더더욱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려면 성공도 해야겠지만 일단 기록이 쌓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쓰다 보니 자작극 같은 결말이 되어버렸.... 다.....
제목을 동력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로 바꾸어야 할지...
글쓰기의 긍정적 힘이라고 해두기로^^;;
어느새 새벽 6시 30분. 여의도의 보조출연 집합 장소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5시에 출발했고, 4시에 일어났다. 육아에 아르바이트에 글이 좋아 발버둥 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이 모든 날들이 의미있는 기록이 될 거라는 희망을 픔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