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십편 Aug 12. 2022

영끌, 금리에 항복합니다.

< 영끌의 속사정 > 83년생의 집





우리는 서울에 살고 있는 83,81년생 부부이다. 결혼한지 어느새 12년 차, 둘 다 40줄에선 병아리. 어릴 적 아무것도 없을  막연하게  40엔 다를 거야, 잘되어있을 거야, 그래도 집 한 채는 갖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집 한 채와 씨름하고 다.


우리에겐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두 딸이 있고, 벌이는 남편 혼자 버는 외벌이 가정이다. 내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소소할 뿐 형편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2020년 여름, 올 대출로 산 지금  집의 원리금은 처음부터 큰 부담이었다. 요즘 말 그대로 영끌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막차를 탄, 상투를 잡은 영끌족'은 아니지만 워낙 무일푼 상태에서 전체를 대출로 샀기에 사정은 비슷할 것 같다. 4억 빚의 원리금을 갚는 일.



요즘 들어 금리가 많이 올랐고, 더 오를 예정이고 금리만 오르는 거라면 어떻게든 감당을 해보겠는데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영끌한 일반대출, 신용대출들은 1년마다 만기가 돌아와 다시 1년씩 연장을 해야 하는 데 그것들도 위태로워졌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대출 연장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만기일에 전액 상환하셔야 해요."



울음이 터진 건 그날이었다.


여러 조각의 대출들 중 1500만원짜리 일반 대출로 비교적 비중이 적은 대출이었지만, 그동안 이미 받은 대출 연장이 거부된 적 없었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1500만 원을 어디서 구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곁에서 놀고 있 아이들은 서로 깨물며 뒹구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장난을 치고 있었고, 종종 튕겨져 내 몸을 치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티 없는 웃음소리에 머리가 쭈뼛해졌다.



혼자의 몸이라면 두려울 게 없을 같은데. 훌훌 털고 당분간 돈을 벌기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방을 잡아 일하며 하루씩 먹고 살아도 마음이 가벼울 같은데.



이 집을 시세로 처분하면 빚을 갚고 남는 돈 2억 가량. 요즘 2억으로 갈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지만 대출 보태어 전세를 다시 구한다면 이 동네에 살 수 있다. 하지만 매수할 사람이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 시세보다 2억이상  낮추어 급매로 처분한다면 수중에 남는 게 없는 다시 제로의 상태로 돌아간다. 주위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들도 억대로 올랐으니 완전히 다른 동네로 가야 할 테고 전학을 가야 할 테고...


아니 그보다 당장 1500만 원은 어디서 만들지?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해서 영끌을 했느냐고..?

영끌의 속사정


막연히 바라보며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처음부터 무리해서 집을 사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이사를 다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쯤 전세가 씨가 말라 애를 먹었던  기간이 한 번 있었고(이때 만삭이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빌라를 사야 했고) , 또 영끌족이 많이 매수를 했다는 2년 전쯤엔 전세 매물은 있으되 전셋값이 매매 값과 거의 비슷할 만큼 올라있었다.



신혼집으로 원룸 월세살이부터 시작해 독산동 가장 꼭대기 다가구 주택 전세, 빌라 전세, 만삭인데 전세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열한 평 빌라를 매매했던 경험까지. 8년 동네 개의 집과 집주인을 거치며 우린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전셋값이나 매매 값이나 비하다면 우리가 올려다 보기에 거대한 산인 건 매한가지였고 그땐 금리가 이리 비싸지 않아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내 집에 살고 싶었을 뿐이다.



도둑질한 돈으로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 신용만큼의 대출을 받은 것이고(아니다, 사실 부모님 명의 친정집 담보로 받은 대출도 있다, 물론 우리가 원리금 갚는 조건으로) 지금 와서 나라에 구제해달라는 청원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감당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면 내놓을 뿐인데 영끌에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참 매섭기만 했다.





결국 집을 내놓고 온 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결혼 11년째 인데, 이 집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것도 없었던 원점이다. 11년 동안.. 무얼 했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아이 둘이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이니 아이들 키운 것 하나는 있다고 해야 할까. 남편은 쭉 성실히 회사를 다녔으니(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니) 우리가 이토록 제자리걸음인 것은 내 탓인 것 같다. 대략 두 가지 후회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직장을 그만 두어 돈을 벌지 않은 것. 두 번째는 마른걸레 짜내 듯 짜내서 돈을 모으지 못한 것.



생각해 보면 여러 번,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외벌이로 아껴 살며 아직 어린아이들을 더 돌보아야 할지, 맞벌이로  가정 경제를 먼저 일으켜야 할지. 집을 무리해서라도 사야 할지, 불편해도 전세를 살아야 할지. 집을 무리해서라도 사야 할 타이밍과 무리해선 안 되는 타이밍은 언제인가. 주식, 코인 투자 열풍에 나도 올라타야 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될는지 등.

 


아... 몇 번의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이 지금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면 나의 선택들은 모두 오답이었던 걸까?



억울함이 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정은 있었고 그리고 10년의 세월 동안 얻은 것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지난 시간을 차근차근 되돌아보기로 했다.



경기도 원룸에서 월세로 시작한 신혼집, 독산동 꼭대기 다가구 주택 전세 살이, 서울 빌라 전세, 전세가 없어서 강제로 했던 빌라 매매 천신만고 끝의 매도,

 이번의 아파트 매매에서 매도 결심에 이르기까지..

궁핍하고 가난하다고 말하기엔 더 힘드신 분들이 계시니 죄송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하기엔 숨이 인중까지 콱 막히도록 힘겹게 버티고 있는 내 삶의 중간 점검을 공유하려고 한다.




부끄러움과 두려움도 있지만 여기가 나의 종착지가 아니기에, 감수하려 한다. 지금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현실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이나 고통은 매한가지가 아닐까 생각하며.



작가의 이전글 Intr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